유전 위험도 높은 비후성 심근병증, 젊을수록 돌연사 위험 높다

권선미 기자 2024.09.26 15:05

비후성 심근병증의 진단과 치료 포인트

비후성 심근병증은 심장 근육이 비정상적으로 두꺼워지면서 좌심실 공간이 좁아지고 기능이 저하되는 질환이다. 호흡곤란, 흉통 등 다양한 증상이 나타나고 심한 경우 돌연사로도 이어질 수 있어 치명적이다. 유전 위험도가 높은 비후성 심근병증은 조기 진단과 적절한 치료가 중요하지만 아직까지 진단조차 받지 않은 환자가 많다. 다행히 폐색성 비후성 심근병증을 근본적으로 치료할 수 있는 최초 신약으로 캄지오스가 등장해 7월 약제급여평가위원회에서 급여 적정성을 인정받았다. 그런데 3개월이 지난 지금까지도 급여 등재가 지연되면서 절박함이 커지고 있다. 세계심장연맹(WHF)이 제정한 '세계 심장의 날'(9월 29일)을 계기로 순천향대 부천병원 심장내과 문인기 교수에게 비후성 심근병증의 진단과 치료 포인트를 짚어 봤다.
권선미 기자 kwon.sunmi@joongang.co.kr

Check 1. 비후성 심근병증이어도 미진단인 채 지내는 비율이 더 많다


O 지난해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등록된 비후성 심근병증 환자는 2만2000여명 수준이다. 관련 연구에서 비후성 심근병증은 일반 인구의 400~500명에 한 명꼴로 발생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수치를 국내 전체 인구인 5175만 명(통계청 2024년 기준)에 적용하면 비후성 심근병증 환자는 10만~25만 명 수준으로 추산된다. 의료계에서는 비후성 심근병증 환자의 상당수는 미진단 상태로 추정한다. 전체 비후성 심근병증 환자의 85%가 미진단이라는 연구 보고도 있다. 문인기 교수는 “국내에서 8만~23만 명의 비후성 심근병증 환자가 진단도 받지 않은 고위험군으로 추정되는 만큼 숨겨진 환자 발굴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Check 2. 유전 질환이므로 가족도 검사를 받아야 한다 

O 비후성 심근병증은 심장 근육에 발생하는 유전성 질환으로 청소년기와 청년기에 주로 발병한다. 심장 근육 단백질의 변이를 유발할 수 있는 유전자의 이상과 관련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데, 유전자 변이는 비후성 심근병증 환자의 약 30~40%에서 발견된다. 대부분 상염색체 우성으로 유전되며 비후성 심근병증이 있는 환자의 자녀는 50% 확률로 동일한 변이 유전자를 물려받는다. 

실제 폐색성과 비폐색성을 구분하지 않고 비후성 심근병증이 있는 소아의 50~60%는 가족력이 있다. 문 교수는 “최신 글로벌 가이드라인에서는 비후성 심근병증 환자의 직계 가족일 경우 심전도 및 2D 심장 초음파 검사를 받아보도록 권장하고 있다”고 말했다. 국내에서는 2021년 9월부터 진료 의사의 의학적 판단에 따라 심장 질환이 있거나 의심되는 경우 또는 경과 관찰이 필요한 경우 건강보험 필수급여가 적용돼 심초음파 검사를 받을 수 있다. 특히 비후성 심근병증 환자에서 병원성이 있거나 병원성이 높은 유전자 변이가 확인된 경우 직계 가족의 유전자 검사도 권장한다. 선제적 검사는 비후성 심근병증을 조기에 발견해 적절한 시기에 치료와 관리를 받을 수 있도록 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Check 3. 비후성 심근병증이라도 증상이 가벼우면 큰 문제가 없다

X  아동부터 청소년기, 성인기 등 다양한 연령대에 광범위하게 발병하는 비후성 심근병증의 증상은 매우 다양하다. 심장 근육이 비대해도 겉으로 느껴지는 증상이 없을 수 있고 운동 등 신체 활동 시에만 숨이 차는 증상을 느끼기도 한다. 진행성 질환인 비후성 심근병증 증상의 발현 시기는 환자마다 다르다. 비후성 심근병증의 가장 흔한 증상은 호흡곤란이다. 전체 환자의 90%가 이 증상을 호소한다. 비후성 심근병증 증상이 발현된 환자는 평소 일상 생활 중에 걷기, 계단 오르기 등 가벼운 신체 활동을 하는 것만으로도 호흡곤란, 가슴 통증, 어지러움증을 호소한다. 심근의 비후가 심한 경우 실신할 수도 있다. 

Check 4. 젊을 때 발병하면 돌연사 위험이 높다

O 그래서 조기 진단이 중요하다. 비후성 심근병증은 부정맥, 심방세동, 심부전과 같은 심혈관계 합병증의 발생 위험이 크다. 비후성 심근병증에 의해 유발된 심실 부정맥은 급사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특히 젊은 연령대에서 발생하는 급사의 가장 흔한 원인 중 하나로 비후성 심근병증이 꼽힌다. 실제로 한 연구에서 20~29세 젊은 비후성 심근병증 환자 사망률이 같은 연령대의 일반 미국 인구에 비해 4배 더 높은 것으로 보고됐다. 

Check 5. 비후성 심근병증도 표적 치료가 가능하다

O 최근에 주목하는 최신 치료법이다. 비후성 심근병증 중 증상성(NYHA class II-III) 폐색성 비후성 심근병증 환자의 운동 기능과 증상 개선을 목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신약인 캄지오스(성분명 마바캄텐)가 대표적이다. 지난해 5월 식품의약품안전처로부터 허가를 받아 국내에서도 사용 가능하다. 캄지오스는 폐색성 비후성 심근병증의 기저 병태생리를 직접적으로 표적하는 첫 치료제다. 증상성 폐색성 비후성 심근병증 환자를 대상으로 한 'EXPLORER-HCM' 임상 결과에서 1차 평가변수인 증상의 정도(NYHA 등급)와 운동 능력(pVO2)을 모두 고려한 복합 평가변수에서 위약군 대비 유의한 개선을 보인 것으로 나타났다.

기존에는 심장 근육의 수축을 약화시키고 심장 박동을 느리게 하는 등 증상 완화를 중심으로 한 대증적 치료만 가능했다. 이런 약물 치료에도 반응하지 않으면 비대해진 심장 근육을 절제해 좌심실 유출로를 넓혀주는 수술적 치료를 고려해야 했었다. 문 교수는 “이전까지의 약물치료 방법은 단기적인 증상 완화만 가능했지만, 캄지오스는 장기적인 차원에서 환자의 증상과 삶의 질을 개선시킬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앞으로 건강보험 적용까지 이어져 더 많은 환자가 조기에 진단을 받고 최신 치료 혜택을 받을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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