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증 아토피 피부염의 최신 치료 트렌드는 염증을 유발하는 원인 물질(사이토카인)을 표적으로 억제하는 아토피 표적 치료다. 그런데 중증 아토피 피부염은 환자마다 임상적 증상, 치료 반응이 다양하게 나타나는 이질성이 크다. 겉으로 보기에 증상이 비슷해도 개별 다양성이 존재해 최적의 치료 효과를 보는 치료제가 다를 수 있다는 의미다. 다양한 치료 옵션이 필수적인 이유다. 현재 국내 허가를 받고 보험급여가 적용되는 중증 아토피 피부염 표적 치료제는 생물학적 제제 2가지(듀피젠트, 아트랄자), JAK 억제제 3가지(올루미언트, 린버크, 시빈코) 등 모두 5종류나 된다.
중증 아토피 피부염 치료의 핵심은 환자에게 맞는 약 찾기다. 당연하게도 실제 써보지 않고서는 어떤 약이 가장 잘 맞는지 알기 어렵다. 대한아토피피부염학회에서도 지난 7월 발표한 2024 한국 아토피 피부염 치료 가이드라인을 통해 중등도 이상 아토피 피부염 환자에서 생물학적 제제나 JAK 억제제에 불충분한 반응을 보이거나 부작용으로 사용할 수 없는 경우 다른 생물학적 제제 혹은 JAK 억제제로 변경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이약 저약 바꿔가면서 치료 효과를 확인해봐야 한다.
한국은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중증 아토피 피부염 치료에서 교체 투여를 허용하지 않는 나라다. 처음 선택한 약이 부작용이 심하거나 치료 효과가 불충분해도 산정 특례와 건강보험 급여를 지원받으려면 어쩔 수 없이 이를 감내해야 하는 경우가 많았다. 더 효과적인 치료를 위해 다른 치료제를 쓰려면 비급여로 치료비 전액을 환자가 부담하거나 증상을 악화시킨 다음 4개월 동안 단계별 치료를 다시 거쳐야 한다. 지난 9월 더불어민주당 전진숙 의원이 중증 아토피 피부염의 치료 환경 개선 방안에 대한 정책 토론회에서도 이런 내용을 언급하며 교체 투여의 급여 허용을 강력하게 주장하기도 했다. 이렇게 실질적 치료 접근성이 떨어지는 점을 올해 국정감사에서 서미화·전진숙(더불어민주당), 김예지(국민의힘) 의원이 지적하면서 대책을 요청하자 중증 아토피 치료제의 교체 투여 관련 논의가 급물살을 탔다.
호주·영국·캐나다선 제한 없이 교체 투여
다행히 국회에서 대책 마련을 요청하면서 중증 아토피 피부염 치료제의 교체 투여를 허용하는 것으로 후속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 그런데 교체 투여 허용 범위가 생물학적 제제에서 JAK 억제제로 혹은 JAK 억제제에서 생물학적 제제로 바꾸는 등 기전이 다른 경우로만 제한적으로 교체 투여가 허용될 수 있다는 말이 나온다. 임상 현장에서는 교체 투여가 허용된 것은 긍정적이지만, 반쪽짜리 교체 투여가 될 수 있다고 우려한다. 반면 호주·영국·캐나다 등 생물학적 제제, JAK 억제제가 허가·급여되는 국가에서는 별다른 제한 없이 교체 투여가 이뤄지고 있다.
임상 현장에서는 더 나은 중증 아토피 피부염 치료를 위해 제한 없는 교체 투여 필요성을 강조한다. 경북대병원 피부과 장용현(대한피부과학회 보험이사) 교수는 “중증 아토피 피부염은 환자마다 매우 이질적인 양상을 보이는 질환으로 최적의 치료 효과를 보이는 약을 찾기 위해서는 모든 약이 제한 없이 교체가 가능해야 한다”고 말했다. 대한아토피피부염학회 소속 의료진에게 중증 아토피 피부염 치료제의 교체 투여 범위에 대해 물었더니 생물학적 제제에서 다른 생물학적 제제로 바꾸거나, 생물학적 제제에서 기전이 다른 JAK 억제제로 바꾸거나, JAK 억제제에서 생물학적 제제로 바꾸거나, JAK 억제제에서 다른 JAK 억제제로 바꾸는 것 모두 응답자의 90% 이상이 동의한다고 밝혔다. 특히 같은 생물학적 제제 간 교체 투여가 필요하다고 응답한 비율이 96%로 가장 높았다.
대한아토피피부염학회 최응호(원주세브란스기독병원 피부과 교수) 회장은 “생물학적 제제와 JAK 억제제 간, 생물학적 제제 간, JAK 억제제 간 등 사용 가능한 모든 표적 치료제를 자유롭게 바꿔가며 쓸 수 있어야 진정한 교체 투여”라며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교차 투여 급여를 적용하지 않는 이유로 무작위 이중맹검 임상시험 연구결과가 없다는 점을 들었는데, 이미 허가를 받은 자사 약을 다른 약으로 바꿔도 효과가 있다는 근거 데이터를 만들고자 막대한 임상시험 투자를 할 이유가 없어 데이터 도출이 불가능하다”고 밝혔다.
임상 데이터를 근거로 교체 투여를 제한적으로 허용하겠다는 것은 사실상 중증 아토피 피부염에서 약제 간 교체 투여를 허용하지 않겠다는 말과 같다는 의미다. 참고로 아토피 피부염과 비슷하게 면역 매개 염증성 질환인 중증 류머티즘 관절염, 강직 척추염, 건선을 치료할 땐 근거 수준, 질환 중증도를 고려해 교체 투여를 허용하고 있다.
중증 아토피 약 다양해도 급여 제한에 활용 못 해
특히 기전이 다른 약만 제한적으로 교체 투여를 허용하면 지금과 마찬가지로 고가의 치료제를 우선 처방하는 쏠림 현상이 나타날 것이라는 지적도 나왔다. 현재 건강보험이 적용되는 5종류의 중증 아토피 피부염 치료제의 약값은 월 56~140만원까지로 편차가 크다. 교체 투여가 인정되지 않아 사실상 첫 번째로 선택한 약제에만 건강보험이 적용되다 보니 가장 비싼 약에만 처방이 몰리는 현상이 발생한다. 실제 국회 더불어민주당 전진숙 의원실에서 2021년부터 2024년 상반기까지 중증 아토피 피부염 치료제의 청구 현황을 살펴봤더니 중증 아토피 피부염 환자의 90%가량이 가장 비싼 치료제인 듀피젠트를 처방받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런 현상은 치료제의 효능 때문이라기보다 교체 투여가 제한된 상황에서 부작용, 약효 불충분을 이유로 약을 바꿔야 할 때 환자의 경제적 부담을 줄여주기 위한 것이다. 기전이 다른 약끼리 계열 간 교체 투여를 허용한다고 해도 결국 건강보험 급여 적용 기회가 1번에서 2번으로 늘어났을 뿐이다. 어떤 약이 좋은지 모르는데 계열별로 약값이 가장 비싼 약을 먼저 처방해야 교체 투여 상황이 발생했을 때 환자 입장에서는 개인이 감당해야 하는 약값이 줄어들어 유리해지기 때문이다. 국내에서 5종류의 중증 아토피 피부염 치료제 모두 건강보험이 동일하게 적용되고 있는 만큼 건강보험 재정 절감 측면에서도 제한 없는 교체 투여 인정이 필요하다는 주장에 설득력을 얻는 배경이다.
중증아토피연합회 박조은 대표는 “증상이 심각한 아토피 피부염 환자를 위한 표적 치료제의 경우 보험급여가 적용되는 약이 다섯 개나 돼도 지금과 같은 상황에선 첫 치료제를 실패하게 되면 나머지는 모두 그림의 떡이 된다. 환자마다 너무 다른 아토피 피부염의 경우엔 치료제를 써보지 않고는 효과가 있을지, 부작용이 있을지 알 수 없어 더욱 막막하다. 특히 경제적으로 어려운 상황에 처한 환자의 경우 치료제 교체 시 비급여 상황으로 인한 경제적 부담은 더 가혹하게 다가올 것이다. 불합리하게 막혀 있는 교체 투여 보험급여 문제가 하루빨리 해결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중증 아토피 피부염 치료제의 교체 투여 제한 문제에 대해 질의한 국민의힘 김예지 의원은 “중증 아토피 피부염 환자는 교체 투여가 되지 않아 힘들어하는 경우가 많았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서도 후속 논의를 통해 기전이 다른 계열 간 교체 투여는 허용한다고 들었다”며 “지속해서 관심을 가지고 제한 없이 교체 투여가 가능하도록 계속 지켜보고 있다”고 말했다.
권선미 기자 kwon.sunmi@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