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속 치료 중요한 조현병…장기 주사 치료로 일상 패턴 안정화

권선미 기자 2024.06.25 08:22

[닥터스 픽] 〈122〉조현병의 약물치료

아플 땐 누구나 막막합니다. 어느 병원, 어느 진료과를 찾아가야 하는지, 치료 기간은 얼마나 걸리는지, 어떤 치료법이 좋은지 등을 끊임없이 고민합니다. 아파서 병원에 갔을 뿐인데 이런저런 치료법을 소개하며 당장 치료가 필요하다는 말에 당황스러울 때도 있습니다. 주변 지인의 말을 들어도 결정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이럴 때 알아두면 쓸모있는 의학 상식과 각 분야 전문 의료진의 진심어린 조언을 소개합니다. <편집자주>

Q. 16년 전 조현병 진단을 받은 40대 남성입니다. 처음에는 조현병인 줄도 모르고 환청·망상 증상으로 6개월 간 집에서만 생활했습니다. 극단적 선택 시도에까지 이르러서야 부모님에 의해 입원 치료를 받았지만, 재발해 16년 동안 20번 넘게 입·퇴원했습니다. 지금은 증상이 나아져 얼마 전 새로운 회사에 취업했습니다. 규칙적으로 생활하고 사람들과 교류하면서 너무 감사한 마음이 들어 이 상태를 계속 유지하고 싶습니다. 그런데 아무래도 일을 하다 보면 병원을 주기적으로 방문하는 것이 쉽지 않고 매일 약을 먹어야 하지만 특별한 증상이 없다 보니 가끔 잊어버리기도 합니다. 치료를 끊으면 증상이 다시 나타날까 봐 걱정되지만 한편으론 언제까지 먹어야 하나란 생각이 듭니다. 힘들게 취업했는데 회사 동료들이 알아챌까 봐 걱정도 되고요. 최근 매일 약을 먹는 대신 1년에 2~4번만 주사를 맞아도 되는 치료법이 나왔다던데, 저도 처방받을 수 있을지 궁금합니다. 

대구 대동병원 정신건강의학과 박승현 부원장의 조언 

뇌 신경 전달 회로의 기능 장애로 환청·망상·사고 장애 증상을 동반하는 조현병은 100명 중 1명이 경험하는 생각보다 흔한 정신 질환입니다. 잘 알고 있겠지만 증상 발현 초기부터 꾸준히 치료하면 일상생활이 가능하고 치료 예후도 좋습니다. 다만 여러 미디어를 통해 조현병 환자의 강력 사건이 보도되면서 조현병을 무서운 병, 범죄를 일으키는 병,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는 병으로 인식하고 정신 질환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 탓에 치료 자체를 기피하는 경우도 있어 안타깝습니다. 

조현병 치료에서 가장 중요한 점은 발병 초기부터 꾸준히 약물치료를 유지하는 것입니다. 현재 의학 수준에서 조현병은 완치 개념이 없습니다. 평생 약물치료를 병행하면서 증상을 관리해야 합니다. 참고로 조현병을 치료하는 약은 환청·환각·망상이나 이상 행동, 심리적 위축 등 조현병 증상 악화로 재발·입원을 줄이는 역할을 합니다. 정해진 시간에 약을 투여해 체내 약물 농도를 일정한 수준으로 유지시키는 것이 핵심입니다. 이를 통해 각종 조현병 증상이 심해지는 것을 막습니다. 

조현병은 진행성 경과를 보이는 경우가 흔하고 재발 횟수가 늘어날수록 병세가 점점 깊어지며 약에 대한 치료 반응도 저하할 수 있습니다. 대개 조현병 발병 후 치료를 처음 받으면 증상이 호전돼 거의 정상 수준으로 회복합니다. 그런데 자의적으로 약 복용을 중단하면 1년 내 50~70%에서 증상이 재발합니다. 

물론 매일 약을 잊지 않고 장기간 꾸준히 복용하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직장생활로 정해진 때에 병원을 방문하기 어렵거나 약값이 부담이라든가, 매일 약을 챙겨 먹는 행동 자체가 자존감이 떨어져 약을 먹기 싫다든가, 깜빡 잊어 약 복용이 불규칙해지는 등 어떤 이유에서든지 약물치료 순응도가 떨어지면 예후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참고로 조현병 환자의 약물 비순응도는 1년에 40%, 2년에 80%로 보고되고 있습니다. 조현병을 치료하는 의료인의 입장에서도 지속적인 약물치료를 강조하지만 늘 어렵게 느껴집니다. 


이런 약물 비순응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법 중 하나가 장기 지속형 주사 치료입니다. 조현병 치료 유효 성분을 먹는 약에서 주사 형태로 바꿔 투약해 복약 순응도를 높인 것이 특징입니다. 장기 지속형 주사 치료는 약을 잊지 않고 챙겨 먹어야 한다는 심리적인 부담감을 크게 줄여줍니다. 장기 지속형 주사 치료에 쓰는 제품에 따라 약효가 유지되는 기간이 2/4/12/24주 등으로 다릅니다. 가장 최근에 출시된 장기 지속형 주사 치료제(인베가 하피에라)는 한 번 주사를 맞으면 약효가 최대 24주(6개월) 동안 지속됩니다. 장기 지속형 주사 치료로 복약 순응도를 높였더니 재발 위험, 재입원율이 크게 줄었다는 임상 연구도 있습니다. 

실제로 치료 중단으로 재발을 반복한 환자에게 6개월 장기 지속형 주사제로 전환했더니 생활 패턴이 안정화하면서 직장 생활을 유지할 수 있었습니다. 1년에 2번만 병원을 방문하고 일상에 집중하게 되면서 나타난 변화입니다. 국내 조현병 치료 가이드라인에서도 조현병 치료 지속성에 대한 어려움을 보완한 장기 지속형 주사 치료에 대해 초기 조현병부터 만성에 이르기까지 어떤 단계의 환자에서든 투여가 가능하다고 제시하고 있습니다. 특히 지난해 정부에서도 꾸준한 조현병 관리의 필요성을 공감하면서 장기 지속형 주사 치료의 본인 부담률을 완화할 것이라고 발표해 치료비 부담도 줄어들 것으로 예상됩니다.

조현병은 재발할 때마다 뇌의 일부가 손상될 수 있어 치료를 지속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치료 순응도를 높인 장기 지속형 치료제로 조현병 치료 패러다임이 변화하면서 사회활동과 치료를 동시에 이어가는 것이 가능해졌습니다. 조현병에 대한 편견과 자의적 판단으로 치료를 중단하지 않길 바랍니다. 

정리= 권선미 기자 kwon.sunmi@joongang.co.kr

※ 진료받을 때 묻지 못했던 궁금한 점이 있으면 메일(kwon.sunmi@joongang.co.kr)로 보내주세요. 주제로 채택해 '닥터스 픽'에서 다루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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