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도, 방식도 생소한 이 치료는 의외로 국내 70여 곳의 의료기관에서 활용되고 있는 '검증된' 응급 치료방법이다. 급성 심근경색·뇌졸중 등 이른바 치료의 '골든타임'이 존재하는 질환에 폭넓게 쓰인다. 과거에는 드물게 이뤄졌지만, 고령화와 만성질환자 증가에 따라 수요가 빠르게 늘고 있다. 최근 분당서울대병원에서 열린 뇌졸중의 저체온 치료 국제 심포지엄에는 한국·미국·일본 등 100여명의 의료진이 참가해 저체온 치료를 향한 뜨거운 관심을 반영했다. 심포지엄을 주도한 서울대 의대 신경과 한문구 교수, 미국 럿거스 의대 신경과 이기원 교수를 서울 강남구 바드코리아 사무실에서 만나 뇌졸중의 저체온 치료 효과와 한계를 물었다.
-단순히 체온을 낮춘 뒤 올리는 처치를 치료라 할 수 있나.
한문구 교수, 이하 한=저체온 치료를 하는 가장 큰 이유는 신경 세포를 보호하기 위해서다. 뇌졸중이 발생해 한 번 뇌 신경 세포가 손상되면 다시 되살릴 수가 없다. 혈액이 돌지 않은 부위의 뇌 신경 손상을 줄이고, 주변 신경 세포를 가능한 한 많이 살리는 것이 심정지·뇌졸중 치료의 관건이다. 저체온 치료를 통해 뇌 신경 세포의 1차, 2차 손상을 모두 줄일 수 있다. 뇌 혈관이 막혀 생기는 1차 손상, 초기 처치 후 혈액이 다시 유입돼 발생하는 2차 손상 모두에 효과가 있다
이기원 교수, 이하 이=급성심정지·뇌졸중 환자에게는 우선 막힌 혈관을 뚫는 응급 처치가 이뤄진다. 하지만 피부가 다치면 시간이 지날수록 더 많이 부어오르듯, 뇌 혈관이 손상되면 초기 처치 후 해당 부위의 문제가 심각해질 수도 있고 활성산소·염증 물질 등으로 인해 주위의 건강한 뇌 신경 세포까지 망가질 수 있다. 다만, 이런 뇌 손상은 계속 지속하지 않는다. 시간이 지나면 안정화한다. 저체온 치료를 통해 신체 대사를 낮추면 뇌졸중 등으로 인한 손상과 함께 안정화할 때까지 나타날 수 있는 추가 손상도 예방할 수 있다.
이=미국의 경우 급성 심정지 환자에게는 모두 저체온 치료를 적용한다. 의사라면 누구나 해야 하는 치료다. 심정지가 발생한 후 24~48시간 이내에 저체온 치료를 하면 사망률이 줄고, 의식을 찾을 확률이 훨씬 높아진다는 점이 이미 수십년의 연구로 증명됐다. 최근 의학계의 '핫 토픽'은 증명된 심정지 환자 외에 뇌졸중 환자의 저체온 치료다. 다수의 연구가 진행되고 있지만, 아직은 심정지만큼 연구 수준이 높지 않다.
-모든 뇌졸중 환자에게 저체온 치료가 적용되지 않는다는 것인가.
이=그렇다. 외부 충격으로 인한 뇌졸중, 중증 뇌졸중 환자 등에는 저체온 치료가 도움이 된다. 뇌 손상 정도가 크면 뇌가 너무 많이 붓는데, 이러면서 생명 중추인 뇌간을 짓누르게 되면 사망하게 된다. 이렇듯 뇌압이 높거나, 높을 가능성이 큰 환자는 미국심장협회도 저체온 치료를 권고한다. 다만, 모든 환자에게 저체온 치료가 도움이 된다는 것은 확실히 확인되지 않았다. 저체온 치료가 뇌압을 떨어트리는 것은 확실하지만, 이런 처치가 장기적으로 환자 사망률이나 합병증 위험을 낮춘다는 대규모, 장기추적 연구가 아직 없다.
이=뇌 손상 정도는 첫날 혈액 검사나 영상촬영 등을 통해 비교적 정확히 알 수 있다. 손상 정도, 2차 손상 위험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필요한 경우 저체온 치료를 적용한다. 미국에서는 전체 뇌졸중 환자의 10% 이하가 저체온 치료를 받는다. 비율만 보면 적게 느낄 수 있지만, 뇌졸중 자체가 굉장히 흔한 질환이라 저체온 치료를 받는 환자도 많다.
우리나라 뇌졸중 환자 수는 2015년 53만8000명에 달한다. 어림잡아도 매년 수 만 명의 환자가 저체온 치료 대상에 포함되지만, 실제 치료를 받는 환자는 급성심근경색·뇌졸중을 모두 포함해 연평균 300명 가량에 불과하다. 저체온 치료 장비를 개발·판매하는 바드코리아에 따르면 국내 판매된 저체온 치료 장비는 150여 대로 미국(3000여 대)의 20분의 1 수준에 그친다.
한=미국과 한국은 의료 보험 체계가 다르다. 사보험 중심의 미국은 보험료가 비싸지만, 그만큼 보장받을 수 있는 의료비도 많다. 예컨대 미국은 의사가 필요하다고 판단하면 제한된 금액 안에서 가능한 모든 처치를 수행하고, 그 후 보호자에게 민간보험을 통해 비용을 청구하라 알린다. 반면 국가보험이 주가 되는 우리나라에서는 요건이 되지 않는 치료는 보험이 적용되지 않아 비싸고, 또 이런 처치는 사전에 환자·보호자에게 사전에 동의를 구해야만 한다. 저체온 치료도 마찬가지다. 환자·보호자가 선뜻 결정하기 어려울 수 있고 병원도 큰 수익을 내지 못하니 적극적으로 인력 교육이나 시설 확충에 나서지 않는다. 이렇다 보니 우리나라에서 뇌졸중의 저체온 치료를 하는 곳은 분당서울대병원, 서울대병원, 서울아산병원, 아주대병원, 계명대동산의료원, 동아대병원, 충북대병원, 전남대병원 등 소수에 불과하다.
이=저체온 치료에 대한 대중의 인식은 한국이 미국보다 훨씬 높다. 최근에 한국 의학 드라마에서 저체온 치료를 소재로 다루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하지만 한국보다 미국에서 뇌졸중에 저체온 치료가 더 활발히 이뤄지는 것 같다. 미국은 중증 뇌졸중을 치료하는 대학병원 대부분에 저체온 치료 장비가 있다.
한=뇌 신경을 다루는 의사라면 저체온 치료가 환자에게 꼭 필요한 처치라는 데 이견이 없다. 저체온 치료를 모르거나, 아는 데 장비와 인력이 없어 못 받는 환자가 없어야 한다. 저체온 치료는 척추손상, 감염, 뇌전증(간질) 등 다른 뇌 신경 손상 예방에 쓰일 가능성이 크다. 저체온 치료를 위한 의료 비용(수가)·장비·교육 등 삼박자를 갖추는 데 정부와 의료계가 더 많은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박정렬 기자 park.jungryul@joongang.co.kr
◇한문구 교수
◇이기원 교수
-미국 럿거스 의대 신경과 교수, 미국 로버트 우드 존슨 대학 병원 뇌졸중 책임자, 신경학 분야 교과서 'Neuro-ICU Book' 편집장, 미국 신경학회·심장협회·뇌졸중협회 정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