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경색 절반 '혈전용해제' 안들어… '골든타임' 놓쳐도 시술하면 예후 좋아

박정렬 기자 2018.03.16 09:36

혈관 뚫어주는 ‘혈전제거술’ 6시간 후 시행해도 효과. 고령 환자도 시술 가능해

뇌경색은 불시에 찾아온다. 기존에 느끼지 못했던 어지럼증과 마비, 보행 장애가 순식간에 환자를 덮친다. 이때는 막힌 뇌혈관을 가능한 빨리 뚫어야 후유증을 최소화할 수 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이른바 ‘골든타임’이라 불리는 초기 처치까지 시간이지만, 전문가들은 설령 이 때를 넘겨도 적극적으로 시술 등의 치료를 시도할 필요가 있다고 입을 모은다.
 
뇌경색 위험요인, 고혈압 비중 커
뇌경색은 혈전(피떡)이 뇌혈관을 막아 뇌신경 세포가 손상되면서 의식 저하,언어 장애, 마비 등이 동반되는 질환이다. 혈관 건강이 망가지기 쉬운 고령층과 고혈압·심방세동 환자, 흡연자는 고위험군에 속한다.

실제 전남대병원이 2013년부터 2017년까지 뇌혈관이 혈전(피떡)으로 막힌 뇌경색으로 응급 치료를 한 603건의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처치 건수는 2013년 111건에서 2017년 138건으로 5년 새 24% 증가했다. 60대 이상 환자가 10명 중 8명이었고, 고혈압을 앓는 사람이 절반 이상(57%)이었다.
 
뇌경색 환자가 병원으로 이송되면 의료진은 가장 먼저 혈전용해제를 혈관에 투여하는 혈전용해술을 시도한다. 혈관을 막는 혈전을 녹여 뇌에 다시 혈액이 돌게 돕는 치료다. 하지만 이 방식은 전신에 영향을 미칠 수 있어 종전에 수술했거나 외상을 입은 환자, 뇌출혈 위험이 큰 환자에게는 사용하기가 어렵다. 또 증상이 나타난 뒤 4시간 30분 내에 투여하지 않으면 혈전용해제를 투여해도 뚜렷한 치료 효과를 볼 수 없고 오히려 부작용이 커 사용이 제한적이다.
 
전남대병원 영상의학과 백병현 교수는 “큰 뇌혈관이 막혀야 증상이 겉으로 드러나는데, 이 경우 혈전 역시 상대적으로 크기가 커 약물로 치료가 어려울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전남대병원 조사에 따르면, 이런 이유들로 전체 환자 중 절반에 가까운 49%(296건)은 혈전용해술을 해도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이렇듯 약물로 치료가 어려울 때는 막힌 혈관을 기계적으로 뚫는 혈전제거술이 필요하다. 허벅지 부위를 5mm 이내로 절개한 뒤 혈관에 미세 도관과 스텐트(금속 그물망)를 삽입해 혈관을 넓히고 혈전을 들러붙게 해 빼내거나, 혈전을 흡입하는 치료법이다.
 

서울아산병원 신경중재클리닉 의료진이 뇌경색 환자의 막힌 혈관을 뚫는 시술을 진행하고 있다. [사진 서울아산병원]

그간 이런 혈전제거술의‘골든타임’은 6시간으로 알려져 있었다. 이후로는 혈전 제거술의 효과와 안정성이 검증되지 않아 의료진의 입장에서도 시술 여부를 결정하기가 쉽지 않았다.

그런데 최근 이런 혈전제거술을 발병 6시간 이후 진행해도 치료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는 사실이 국내와 해외 연구를 통해 속속 확인되고 있다.

서울아산병원 신경중재클리닉 서대철 교수팀이 국제학술지 ‘신경중재수술(Journal of Neurointerventional Surgery)' 최근호에 발표한 연구가 그 중 하나다. 서 교수팀은 연구에서 "2014년부터 2년 간 뇌경색으로 응급실을 찾은 환자 98명 중 발병 6시간 이내에 시술을 받은 32명과 발병 6시간이 지나 시술을 받은 32명을 1대1 매칭해 비교한 결과 두 환자군의 퇴원 시 상태와 사망률에 차이가 없었다"고 밝혔다.
 
특히, 서 교수팀이 뇌졸중 환자의 신체 기능장애를 평가하는 ‘수정랭킨척도(mRS)’로 시술 후 환자 예후를 분석한 결과, 타인의 도움 없이 가벼운 활동을 수행할 수 있는 정도(0~2점)가 발병 6시간 미만 시술 환자군 중에는 11명, 발병 6시간 이후 시술 환자군 중에는 10명으로 큰 차이가 없었다.
 
서대철 교수는 “뇌경색은 발병시간에 따라 뇌의 괴사 부위가 점점 확대되므로 빨리 발견하고 시술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하지만 늦게 발견한 경우에도 적극적인 시술을 받았을 때 환자의 예후가 좋고 충분히 안전하다는 것이 이번 연구로 검증됐다”고 말했다.
 
미국 스탠퍼드대 연구팀도 올해 초 국제학술지 ‘뉴잉글랜드저널오브메디신(NEJM)’에 개재한 연구를 통해 이와 비슷한 결론을 냈다.

스탠퍼드대 연구팀은 미국 의료기관 38곳에서 급성 뇌경색 환자 총 182명을 대상으로 다기관 무작위 오픈라벨 연구를 진행했다. 연구팀은 증상이 발생한 뒤 6~16 시간 내 혈전제거술을 받고 표준 치료를 한 집단과 표준 치료만 진행한 집단의 수정랭킨척도를 분석했다.
 
그 결과 이 점수가 0~2점으로 뇌졸중 후 장애가 심각하지 않은 환자 비율은 혈전제거술을 받은 쪽이 45%, 그렇지 않은 쪽이 17%로 시술 받은 쪽이 2배 이상 높았다. 반면, 수정랭킨척도가 5~6점으로 중증 장애 또는 사망한 환자 비율은 시술한 쪽이 22%, 시술하지 않은 쪽은 42%로 나타났다.
 
스탠퍼드대 연구팀은 “뇌졸중 환자가 병원에 다소 늦게 도착하더라도 혈전제거술로 치료 가능하며, 특히 증상 발현 16시간 이내 혈전제거술을 진행하면 예후가 개선됨을 입증한 데 연구의 의의가 있다”고 밝혔다.
 
전남대병원 백병현 교수는 “혈전제거술은 전신마취를 하지 않아도 돼 고령 환자도 시술할 수 있다”며 “뇌졸중이 의심될 때는 가능한 한 빨리 응급실을 찾아 진단, 치료하는 것이 중요하고 설령 늦었다고 해도 적극적으로 치료를 고려해야 할 것”이라 강조했다. 박정렬 기자 park.jungryu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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