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 고통 COPD 환자의 삶, 끈질긴 ‘교육 치료’로 개선

류장훈 기자 2017.09.11 09:04

명의 탐방 건국대병원 유광하 천식·COPD센터장

유광하 천식·COPD센터장은 COPD의 낮은 조기 발견율과 치료 순응도를 높이기 위해 환자 교육에 열정을 쏟는다. 이 열정은 환자의 믿음과 삶의 질 개선으로 이어진다. 장석준 기자
 

병만 고치면 ‘소의(小醫)’, 사람을 고치면 ‘중의(中醫)’, 사회를 고치면 ‘대의(大醫)’라고 했다. 증상보단 환자를 보고 사회의 인식까지 바꿀 수 있는 의사가 훌륭한 의사라는 의미다. COPD(만성 폐쇄성 폐 질환) 진료가 그렇다. 중의와 대의의 역할이 절실한 분야다. 환자의 인식이 부족해 병원 문턱이 여전히 높고, 환자는 치료법을 제대로 따르지 않는다. 건국대병원 유광하 천식·COPD센터장은 질환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개선하고 치료 순응도를 높이는 데 심혈을 기울인다. 그 노력은 고스란히 진료와 연구, 환자 교육에 녹아 든다.
 
유해물질로 인해 폐포에 염증
금세 숨 차고, 기침·가래 잦아
사망률 세계 3위, 국내 7위 질환

COPD는 독특한 질환이다. 심각하지만 사람들이 심각성을 모른다. 그래서 증상이 있어도 병원을 잘 찾지 않는다. 전 세계적으로 사망률이 세 번째로 높은 질환이다. 단일 질환으로는 가장 높다. 국내 사망률도 7위에 해당한다. 회복되지 않고 평생 관리해야 하는 질환이지만 환자가 관리에 소홀하다.
 
이유는 있다. COPD는 흡연 등 유해 물질이 기관지를 드나들면서 폐포에 염증을 일으키는 질환이다. 폐 기능이 전반적으로 떨어져 숨이 차고 기침·가래가 생긴다. 증상이 생기면 환자는 호흡에 행동량을 맞춘다. 몸은 게을러지고 증상은 숨겨진다. 유광하 센터장은 “폐 기능이 50%까지는 괜찮은데 이보다 떨어지면 숨이 차고 괴로워진다. 빨대나 커피스틱으로 숨을 쉬는 느낌”이라며 “결국 악화된 뒤 COPD 환자의 6~7%만 병원을 찾는다”고 했다. 

조기진단 방법 찾는 연구에 몰두
조기 진단을 위한 방안이 필요했다. 유 센터장은 2015년 한 연구를 진행했다. 우선 개인병원에 고혈압·당뇨로 내원한 환자 중 10년 이상 흡연력이 있는 40세 이상의 환자를 대상으로 기침·가래·숨참 증상 중 하나라도 있는지 물었다. 그리고 증상이 있는 환자를 대상으로 폐 기능 검사를 실시했다. 그 결과 이 중 23%가 COPD로 진단됐다. 이듬해엔 무대를 바꿨다. 서울역 흡연구역에 있는 흡연자가 대상이었다. 40세 이상이면서 10년 이상의 흡연력이 있는 사람을 추린 뒤 똑같이 폐 기능 검사를 실시했다. 이번에는 증상 유무를 묻지 않았다. 이번에도 COPD 진단 비율은 23%였다.
 
두 연구가 시사하는 바는 크다. 증상 유무나 병원 내원 여부와 관계없이 나이(40세 이상)와 흡연력(10년 이상)만으로도 COPD를 의심할 만한 요소가 충분하다는 것을 뜻한다. 유 센터장은 “두 연구의 결과가 같았다는 것은 폐 기능 검사가 증상이 있어야만 필요한 것이 아니라 특정 나이와 흡연력에 해당하기만 해도 검사할 필요가 있다는 것을 시사한다”고 강조했다. 이 연구결과는 COPD의 조기 발견을 위해 폐 기능 검사를 국가건강검진 항목에 포함시켜야 한다는 주장을 뒷받침한다. 

믿음 주는 교육으로 치료율 높여

COPD의 치료는 비교적 간단하다. 주로 흡입용 기관지 확장제를 쓰면서 필요시 경구용 스테로이드나 항생제를 짧게 처방한다. 문제는 치료 순응도가 너무 낮다는 것이다. 환자가 치료법을 제대로 이행하지 않는다. 제대로 모르거나 방심해서다. 흡입제는 평소에 관리를 위해 꾸준히 사용해야 폐 기능이 나빠지는 걸 막는다. 하지만 많은 환자가 숨이 찰 때만 사용해 증상이 악화한다.
 
유 센터장은 교육에 많은 부분을 할애한다. 환자가 외래 방문 시 흡입제를 지참하도록 한다. 그리고 진료 중 환자 본인이 사용하도록 한다. 직접 사용법이 틀린 분을 지적해 교정하고 급성 악화 시 행동요령까지 세세히 일러준다. 진료실을 나서면 교육 프로그램으로 재확인한다. 건대병원을 찾는 COPD 환자의 순응도가 높은 이유다. 이를 반영하듯 건대병원은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실시한 두 차례의 COPD 적정성 평가에서 모두 1등급을 받았다.
 
유 센터장이 환자에게 확신과 믿음을 줄 수 있는 바탕은 연구에 있다. 그는 10분간 압축해서 제대로 교육하는 시스템을 갖추면 2주 간격으로 세 번 교육하는 것과 유사하게 확실한 효과가 있다는 것을 확인한 바 있다. 그는 “환자에게 확신에 차서 단호하게 치료법을 알려준다”고 했다. 의사의 미묘한 표정과 행동 하나에도 환자의 순응도는 확연히 갈리기 마련이다.
 
치료가 화려하진 않지만 결과는 드라마틱하다. 유 센터장은 “지하철역에서 진료실까지 호흡이 가빠 수십 번 쉬었다 오던 환자가 2개월 후 한번에 왔다는 말을 할 때면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교육이 쉬운 것은 아니다. COPD 환자는 고령 환자가 많다. 65세 이상 3명 중 1명꼴이다. 설명을 수없이 반복해야 한다. 그는 “환자가 얼마나 아프면 오셨을까, 증상이 해소되면 얼마나 좋아하실까를 생각하면 교육을 소홀히 할 수 없다”고 말했다.
  
연구 결과, 의료정책에 많이 반영
건대병원의 천식·COPD센터는 여느 센터와는 의미가 좀 다르다. 현재 관련 학회에서는 COPD 환자 교육을 위한 제도적 여건을 만들기 위해 근거를 마련하는 작업을 추진 중이다. 건대병원의 천식·COPD센터는 COPD 환자를 전문적으로 치료하는 동시에 환자 교육시스템의 롤모델을 마련하고 교육 효과를 입증하는 역할을 하게 된다. ‘대의’의 역할을 수행하게 되는 셈이다.
 
실제 유 센터장의 연구결과는 정책에 상당 부분 반영돼 왔다. 그가 이끄는 국내 COPD 코호트 연구를 바탕으로 질병관리본부와 마련한 연구보고서는 정책 우선순위를 제시했고, 하나씩 건강보험이 적용됐다. 호흡 재활, 이동식 산소치료가 대표적이다. 유 센터장은 “앞으로 우리 센터에서는 교육의 효과를 높이기 위한 프로그램과 교육자의 자격 등 세부 요건을 마련해 갈 것”이라며 “국내 COPD 환자 교육에 대한 롤모델을 만들 예정”이라고 말했다.
관련 기사
<저작권자(c)중앙일보에스.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