색소폰 부는 60대 “성인병 하나도 없어요”

김진구 기자 2016.12.12 08:51

노인 건강에 좋은 ‘반려 악기’

은퇴 후 ‘반려 악기’가 노인 건강 지킴이로 각광받고 있다. 색소폰•기타•피아노 같은 악기를 폼 나게 연주하다 보면 건강이 저절로 따라온다. 우울•불안•초조 같은 마이너스 감정이 해소되는 건 물론이고 인지능력•집중력이 향상돼 치매를 예방한다. ‘평생 다뤄본 악기라곤 노래방에서 흔들었던 탬버린이 전부’라는 사람도 쉽게 도전할 수 있다. 나이도 전혀 문제되지 않는다. 서울 강남구 시니어플라자에서 색소폰 강습을 담당하는 김진 강사는 “70∼80세 어르신도 석 달이면 한 곡은 거뜬히 배운다”라고 말했다.

 

정종규씨는 평생 함께할 반려 악기로 색소폰을 만났다. 연주를 시작한 뒤 폐활량이 늘고 소화가 더 잘된다는 그의 다음 목표는 기타를 칠 줄 아는 아들, 피아노·바이올린을 배우는 손자·손녀까지 3대가 모여 팔순 생일에 합주를 하는 것이다. 프리랜서 장석준

고희(古稀•70세)를 바라보는 정종규(68)씨. 동년배와 달리 그 흔한 고혈압•당뇨병 약 한 알 복용하지 않는다. 삐걱대는 관절도 없고 여간해선 기침도 하지 않는다. 얼마 전 건강검진을 받았지만 발견된 질환이 하나도 없었다. 그가 꼽은 건강 비결은 바로 ‘색소폰’이다.


5년 전 은퇴와 함께 시작한 취미는 이제 일상이 됐다. 매일 아침식사를 마치고 집 근처 공원에서 두세 시간씩 연주한다. 색소폰을 처음 연주한 날부터 지금까지 한 번도 어렵거나 지겹다고 느낀 적이 없다. 그는 “색소폰 덕에 아프지 않고 남보다 천천히 늙는다는 자부심이 있다”며 “이 나이쯤 되면 악기 하나쯤 다룰 줄 아는 게 좋다. 나와 같은 장년층에게 적극적으로 권하고 싶다”고 말했다. 

 

이왕이면 ‘노래 부르기’보다 ‘악기 연주’

 

악기를 연주하는 노인은 건강 상태가 양호하다고 전문가들은 설명한다. 실제 우울 정도가 낮고 병원 방문 횟수가 적다는 연구결과가 있다. 경희대 동서의학대학원 오영삼•김영선 교수팀은 노인실태조사(2014년) 결과를 바탕으로 평소 여가활동으로 음악을 즐기는 만 65세 이상 노인 116명과 특별한 여가활동이 없는 116명을 비교했다.

 

그 결과 음악 활동을 하는 노인의 우울 점수는 3.44점, 하지 않는 노인은 6.98점으로 나타났다. 점수가 4점 이하면 ‘정상’, 5~9점은 ‘경증 우울’, 10~15점은 ‘중증 우울’로 판단한다. ‘최근 1년간 병원을 몇 번이나 방문했느냐’는 설문에 대해 음악을 즐기는 노인은 평균 1.54회라고 답한 반면, 그렇지 않은 노인은 1.97회라고 답했다.

 

연구를 진행한 김영선 교수는 “세계보건기구(WHO)는 건강한 노후를 위해 신체적 건강뿐 아니라 정신적•사회적•기능적 건강까지 챙기도록 권고한다. 그런 면에서 악기연주를 포함한 음악 활동은 노년층에 매우 긍정적”이라고 말했다. 그는 “다양한 활동을 통해 역할을 수행하고 이를 성취하는 과정에서 삶에 긍정적 변화가 오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악기 연주가 주는 효과는 단순히 취미로 무언가를 했기 때문이 아니다. 물론 노후엔취미활동 자체가 도움이 되는 건 사실이다그러나 다양한 취미 중에서 건강에 더 큰 도움이 되는 취미엔 몇 가지 조건이 있다. 중앙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김선미 교수는 “반복적이고 사람을 많이 만나는 취미가 좋다. 적당한 난이도가 있어 성취감을 크게 느낄 수 있다면 더욱 좋다”고 말했다. 그는 “음악을 예로 들면 노래 부르기보다 악기 연주가 성취감을 더 크게 느낄 수 있다. 실제 정신과에서도 치료 목적으로 악기 연주를 종종 권한다”고 말했다. 

 

치매 예방하고 폐기능 늘리는 효과

 

그렇다면 실제 악기 연주의 효과는 어떨까. 다양한 연구를 통해 악기 연주는 건강에 긍정적 영향을 끼친다는 결론이 나와 있다. 가장 눈여겨볼 건 치매 예방 효과다. 악기를 연주하려면 눈과 귀, 손가락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여야 한다. 이 과정에서 뇌가 단련된다.

 

특히 뇌의 운동 피질 중 20~30%는 손가락 운동과 연관돼 있다. 손가락을 정교하게 움직일수록 뇌의 혈류량이 늘어난다. 뇌에 산소와 영양분이 풍부해져 치매 진행을 막는다. 김선미 교수는 “손을 이용해 정교한 작업에 몰두하면 뇌의 신경세포가 성장한다. 나이가 아무리 많아도 이런 훈련을 반복하면 신경재생물질이 자극돼 잠들어 있던 신경세포가 깨어나는 것으로 최근 보고됐다”고 설명했다.


관악기를 연주하면 폐기능이 좋아지기도 한다. ‘폐활량이 적은데 무리하다간 폐가 나빠지지 않을까’라고 생각하는 건 오해다. 근육을 키우는 것처럼 깊은 호흡을 반복하면 폐활량이 늘어난다. 병원에서 기관지•폐 수술을 했던 환자에게 재활 목적으로 종종 관악기 연주를 권하는 이유다.


실제 목관악기를 이용한 음악 프로그램을 운영한 결과 폐기능이 증진되고 호흡불편감이 감소했다는 연구결과도 있다(성인간호학회지, 2008). 폐 깊은 곳까지 더 많은 산소가 도달해 피가 맑아지는 부수적인 효과도 있다. 암환자에게 30분간 색소폰을 불게 하자 산소포화도가 개선됐다는 보고가 미국에서 나온 바 있다(미국 간호실습학회지, 2014). 색소폰 연주에 푹 빠진 정종규씨는 “복식호흡을 하지 않으면 소리가 제대로 나지 않는다. 복식호흡을 하면서 폐활량이 늘고 정신도 맑아졌다”고 말했다.

 

반려 악기 어떻게 즐길까
하모니카·피아노처럼 배우기 쉬운 악기부터 동호회서 함께 연주를

 

▶나도 할 수 있다=악보를 볼 줄 몰라도, 나이가 아무리 많아도 당장 악기를 다루는 데는 전혀 문제가 없다. 일단 시작하는 게 중요하다. 각 지자체의 문화센터에서 노인을 대상으로 운영하는 무료 프로그램에 등록만 하면 된다. 곡을 하나 정해놓고 꾸준히 연습하면 두세 달 사이에 연주할 수 있다.
▶우쿨렐레•색소폰부터=처음부터 오보에나 첼로 같은 악기를 연주할 필요는 없다. 제대로 배울 수 있는 강좌도 드물뿐더러 악기 값, 레슨비가 한두 푼이 아니다. 다루기 쉬운 악기로 시작해야 흥미를 잃지 않고 끝까지 할 수 있다. 우쿨렐레•하모니카•색소폰•피아노가 접근성이 높으면서 배우기 쉽다.
▶초급자용으로, AS는 반드시 확인=내 몸에 맞는 악기는 따로 있다. 들어보고 만져봐야 적당한 크기를 안다. 기타의 경우 너무 크면 어깨가 많이 벌어져 관절에 무리를 줄 수 있고, 너무 작으면 현을 정확히 누르기 어렵다. 처음 악기를 구입할 땐 초급자용으로 구입하되 너무 저렴한 건 피한다. 무상 수리 기간(6개월~1년)을 확인한다.
▶악기 건강 챙겨야 나도 건강해진다=하모니카•색소폰•플루트 같은 관악기는 제대로 관리하지 않으면 사람 건강까지 해칠 수 있다. 안으로 흘러 들어간 침이 곰팡이•세균 번식의 원인이 된다. 실제로 ‘색소폰 폐(Saxophone Lung)’라는 질환이 있는데 오래 방치한 관악기를 연주하다 폐•기관지에 알레르기 반응이 일어나는 질환이다.

평균 71세의 노원구립 실버악단이 연주를 하고 있다.

▶혼자보다 여럿이=이왕이면 여러 사람이 모여 연주해야 건강에 좋다. 다양한 사람과 교류하며 그 속에서 자신의 역할을 찾고 수행하면 성취감을 더 크게 느낀다. 그래서인지 혼자 연주하는 피아노보다 색소폰•기타를 권유하는 전문가가 많다. 동호회 활동을 통해 합주를 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연습 공간부터 확인하자=악기를 익히려면 연습 공간이 반드시 필요하다. 이를 고려하지 않고 덜컥 악기부터 구입했다간 낭패를 볼 수 있다. 아파트에서 연주하는 건 이웃에 소음이 될 수 있어 별도의 연습실이나 인근 공원을 미리 찾아두면 좋다. 헤드폰을 꽂으면 본인만 연주 소리를 들을 수 있는 제품도 있다.

 

※도움말=강남구 시니어플라자 김진·김선영 강사,
공연기획사 ‘프레토’ 이정욱 매니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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