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에서 바이오로 기술 패권 경쟁 확산

권선미 기자 2024.09.12 15:24

공급망 관리 등 ESG 대응 중요해져

기술패권 경쟁으로 인한 보호무역주의가 반도체 분야를 넘어 인공지능, 빅데이터, 바이오산업으로 확산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중국은 제약바이오산업에서 원료공급, 신기술 개발 속도 등 격차를 빠르게 추격하면서 미국·EU 등 선진국의 견제를 받고 있다. 미국·EU 등 주요 국은 첨단바이오 분야 기술 확보 등을 위해 정책·제도 지원 전략을 경쟁적으로 마련하고 있다. 동시에 중국 첨단기술 품목을 차단하고 관세를 부과하는 등 위험 완화 정책을 추진할 가능성도 있다는 분석이다. 


12일 한국제약바이오협회는 KPBMA FOCUS를 통해 보호무역주의 확산과 ESG 대응 과제를 분석한 리포트를 공개했다. 미국·EU 등 주요국은 첨단 기술을 중심으로 자국 우선주의 정책을 추진하면서 중국을 견제하기 위한 수단으로 기업의 지속가능성을 달성하는 3가지 핵심 요소로 분류되는 ESG를 활용하고 있다. ESG는 환경(Enviromental), 사회(Social), 거버넌스(Govermace) 등 약자다. UN 글로벌 콤팩트는 금융기관이 투자 시 ESG 같은 비재무적인 요소를 중요하게 고려하면 초과수익을 달성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미국·유럽 등에 위치한 글로벌 빅파마는 거래 협력사를 대상으로 바이오의약품 생산 전 과정에 대해 탄소 중립 등 목표 달성을 촉진하고, 인권, 플라스틱 규제, 생물다양성 등 ESG 활동을 요구하고 있다. 국가 주도의 헤게모니는 기업 거래 조건으로 귀결돼 공급망 관리 중요성이 대두되고 있는 상황에서 ESG 활동은 국내 제약바이오 산업계에도 선택이 아닌 필수다.

미국은 의회에서 지목한 바이오기업과 거래를 제한하는 생물보안법(Biosecure Act)을 통해 중국 최대 바이오 CDMO 및 CRO 기업인 우시바이오로직스(WuXi Biologics)와 우시앱텍(WuXi Apptec)을 규제한다. EU집행위원회는 2023년 10월 군사안보, 인권 침해 활용 가능성 등을 평가하기 위해 첨단반도체, 인공지능, 양자기술, 생명공학 등 4대 핵심기술을 선정하고 올해 말까지 경제 안보 위협 요소를 평가할 것을 권고했다. 

첨단 기술 패권 경쟁이 심화되는 가운데 미국 생물보안법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한다. 올해 9월 9일 미국 하원은 제약·바이오 분야에서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생물보안법을 통과시켰다. 법안에 따르면 미국 의회가 지목한 중국 기업과 거래를 제한한다. 이에 따라 유전체 장비제조 및 분석 서비스 기업인 BGI, MGI, Complete Genomics, 우시앱텍, 우시바이오로직스 등이 규제 대상에 포함됐다. 


앞서 미국은 올해 1월부터 자국민의 유전자 데이터가 중국 영토에 기반을 둔 기업을 통해 중국 정부에 전달되는 것이 국가 안보에 위험을 초래한다고 판단하고 입법화를 추진해 왔었다. 미국 바이든 대통령도 유전체 데이터, 생체인식, 개별적 건강, 금융데이터 등 민감한 데이터가 중국을 비롯한 국가에 유출되는 것을 막기 위한 행정 명령에 서명했다. 생물보안법은 미국 상원과 대통령 승인 단계를 거치면 최종 확정된다. 공화당·민주당의 초당적 지지를 받고 있는 상황에서 올해 안에 제정될 가능성이 높다. 특히 미국은 생물보안법을 통해 CDMO뿐만 아니라 신약 개발사로 범위를 계속 확장하는 것을 고려하고 있다. 

특히 공급망 확보를 위한 ESG 요건이 점차 강화되는 추세다. ESG가 첨단 산업 등을 중심으로 밸류체인 전반에 공급망을 관리하고 통제하는 수단으로 활용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화이자·사노피 등 주요 빅파마도 RE100 참여
구체적으로 환경(Enviromental) 분야에서는 빅파마는 온실가스 감축, 재생에너지 확대, 폐기물 및 포장재 감소, 생물다양성 등을 주제로 관련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특히 공급망 협력사에 온실가스 감축 활동으로 RE100(Renewable Electricty 100%) 달성을 요구하기도 한다. RE100 캠페인은 기업이 필요한 전력망의 100%를 태양광·풍력 등 친환경 재생에너지원을 통해 바런된 전력으로 사용하겠다는 기업의 자발적 글로벌 재생에너지 이니셔티브다. 

RE100참여 기업수는 433곳으로, 이중 제약바이오 기업은 존슨앤드존슨, 화이자, 일라이 릴리, 바이오젠, 노보노디스크, 아스트라제네카, 글락소스미스클라인(GSK), 사노피, 노바티스, 삼성바이오로직스, 다이이찌산쿄 등 24곳이다. 2050년까지 100% 달성을 목표로 하고 있다. 연도별 목표는 기업에서 자율적으로 수립하는데, 2030년 60%, 2040년 90% 이상의 실절 달성을 권고한다. 국내 기업이 반사이익을 얻을 수 있으나 공급망에서 요구하는 ESG 요건을 배제하면 타격을 입을 수 있어 대응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는 분석이다. 

사회(Social)에서는 의약품 접근성, 동물실험 윤리 정책 강화, 인적 자원 관리, 인권, 다양성 및 포용성, 윤리 경영 등을 이슈로 한다. 미국에서 2021년 12월 위구르 강제노동 방지법(UFLPA)을 제정한 이후 EU·독일·호주·뉴질랜드 등에서 인권 실사를 규제화 하고 있다. 대부분의 글로벌 기업은 자사의 인권관리체계를 주요 협력사에 요구하고, 협력사가 다시 하위 협력사에 인권을 관리하는 연쇄효과를 유발한다. 빅파마 역시 합력사를 대상으로 인권, 윤리적 위험 요인을 감사해 컴플라이언스 활동을 모니터링 하는 요구가 활발해질 것으로 전망된다. 

거버넌스(Govermace) 분야는 투명성과 컴플라이언스 체계 강화가 핵심이다. 공급망 관리 전반의 ESG 컴플라이언스 대응도 강조되고 있다. 따라서 일방적인 컴플라이언스 대응을 구축하기보다 국가 차원의 통상 무역 흐름을 지켜보고 산업에 미치는 영향을 식별해 이해관계자에게 투명한 정보 공개가 필요하다. 

전 공급망의 투명한 공개 요구는 원료 의약품의 주요 생산지까지 포함된다. 개발도상국의 경우에는 의약품의 불법 제조, 위조, 인권, 환경 등 다양한 사회적 문제가 발생할 수 있어 공급망 컴플라이언스 체계를 강화할 필요가 있다. 특히 빅파마 대부분은 지속가능경영 보고서를 통해 자사의 정보뿐만 아니라 공급망 내 기업과 함께 환경안전, 온실가스 감축, 인권, 품질관리 등 다양한 항목을 실사하고 공동의 목표를 수립해 관리 실적을 향상할 수 있는 공동의 노력을 추구하고 있다. 

국내 ESG 대응 수준은 미흡한 편
다만 국내 수출기업의 ESG 규제 인식과 대응 현황은 미흡한 상황이다. 대한상공회의소에서 국내 수출기업 205개사를 대상으로 한 ESG규제 대응 현황 등을 조사했더니 대부분이 공급망 실사를 실시하지 않고 있었다. 공급망 실사지침은 탄소국경조정제도에 이어 기업경영에 부담이 되는 주요 수출 규제 중 하나다. 구체적으로 전혀 대응하지 못하고 있다는 응답이 51.9%로 가장 많았고, 잘 대응하지 못하고 있다 16.0%, 보통 20.8%, 어느 정도 대응 10.4%, 매우 잘 대응 0.9%로 나타났다. 

또 해외 협력업체 관리에 어려움을 겪는 것으로 나타났다. 국내 기업의 EU수출 상위 5개 품목은 2023년 기준으로 자동차 106.8억 달러, 이차전지양극재 57.6억 달러, 선박 38억 달러, 자동차 부품 32.9억 달러, 바이오의약품 19.5억 달러다. 바이오의약품도 상당한 수출 품목인 점을 고려할 때 공급망 실사지침의 직접적인 영향을 받을 것으로 예상된다는 분석이다. 

첨단 기술을 중심으로 한 기술 패권 경쟁이 국내 CDMO 기업 등에게 비즈니스 기회로 작용할 수 있다. 미국·EU 등은 공급망 전 과정에서 환경, 인권 등을 투명하게 관리할 것을 강조하고 있는 상황에서 ESG 요건을 충족하지 못하면 빅파마와 거래에서 배제될 수 있다. 리포트를 작성흔 한화투자증권 리서치센터 박세연 수석연구위원은 “정부는 완제의약품 및 원료의약품 등 핵심 품목에 대한 수급 전망, 교역 대상국의 지정학적 위험 요인을 고려하고 ESG 리스크를 식별해 해당 산업 분야에 적절한 정보를 제공할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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