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지혈증은 고혈압·당뇨병과 함께 3대 만성질환으로 꼽힌다. 그러나 나머지 두 질환에 비해 고지혈증을 제대로 알고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이름부터 헷갈린다. 이상지질혈증, 고콜레스테롤혈증, 고중성지방혈증 등 비슷한 이름을 가진 질환이 많다. 고지혈증 환자조차 개념을 정확히 모르는 경우가 적지 않다.
각각 혈액 속 세 종류의 지방 중 어떤 것을 기준으로 삼느냐에 차이가 있다. 혈액에 포함된 지방은 중성지방, HDL-콜레스테롤, LDL-콜레스테롤 등 세 가지로 나뉜다.
중성지방과 LDL-콜레스테롤은 낮을수록 좋다. 혈관벽에 쌓이면서 염증을 일으키고 결국 심혈관질환을 유발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LDL-콜레스테롤은 ‘나쁜 콜레스테롤’이라고도 불린다. 반면, HDL-콜레스테롤은 ‘좋은 콜레스테롤’이라는 별명이 있다. 피 속에서 비누거품 같은 역할을 한다. 혈관 벽에 붙은 중성지방과 LDL-콜레스테롤을 씻어낸다.
고골레스테롤혈증은 피 속에 LDL-콜레스테롤이 많은 상태다. 고중성지방혈증은 혈중 중성지방 수치가 높은 상태를 말한다. 고지혈증은 좀 더 포괄적인 의미다. 총콜레스테롤 수치와 중성지방 수치, LDL-콜레스테롤 수치가 적정 수준 이상인 상태다. 이상지질혈증은 여기에 HDL-콜레스테롤 수치가 적정 수준 이하인 경우까지 포함한다.
LDL-콜레스테롤, 운동·식이요법으로 잘 안 떨어져
결국 고지혈증을 치료한다는 의미는 중성지방과 LDL-콜레스테롤은 낮추고 HDL-콜레스테롤은 높인다는 뜻이다. 핵심은 LDL-콜레스테롤이다. 운동과 식습관 조절로 쉽게 떨어지는 중성지방과 달리 약이 아니고선 잘 떨어지지 않는다.
그래서 고지혈증을 관리할 때는 약을 얼마나 잘 복용하느냐가 중요하다. 이때 복용하는 게 ‘스타틴’ 계열의 약물이다. 거의 모든 고지혈증 환자가 ‘-스타틴’으로 끝나는 약을 복용하고 있을 정도로 유명하면서 효과적인 치료제다.
문제는 이 약물로도 LDL-콜레스테롤 수치가 조절되지 않는 환자가 적지 않다는 것이다. 특히 적극적인 약물 치료가 필요한 고위험군일수록 이런 경향은 더욱 심하다.
실제 대한가정의학회가 LDL-콜레스테롤이 높은 환자를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고위험군의 30%, 초고위험군의 70~80%가 약물치료에도 불구하고 LDL-콜레스테롤 수치가 치료 목표에 도달하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current medical research & opinion, 2013).
가족성 고지혈증 환자 80% 스타틴 안 들어
고위험군에 해당하는 환자는 크게 세 부류다. 첫째, 심혈관질환을 예전에 경험했거나 현재 앓는 경우다. 관상동맥질환, 허혈성 뇌졸중, 일과성 뇌허혈 발작, 경동맥 질환, 말초혈관 질환, 복부동맥류 환자 등이 이에 해당한다.
둘째, 유전적으로 LDL-콜레스테롤이 높은 경우다. 부모 중 한 명만 해당해도 유전되는 우성 유전으로, ‘가족형 고콜레스테롤혈증’이라고도 불린다. 세 유형 가운데 가장 문제가 되는 부류다.
어렸을 때는 괜찮다가 성인기로 접어들며 LDL-콜레스테롤 수치가 200~400까지 치솟는다(정상은 130 이하, 단위 mg/dL). 심혈관질환 발병 위험이 20배나 높지만, 가족형 고콜레스테롤혈증 환자 10명 중 8명은 스타틴을 최고 용량으로 투여해도 목표에 도달하지 못한다.
셋째, 부작용 때문에 스타틴을 쓸 수 없는 경우다. 간 기능이나 근육통 등으로 스타틴을 쓰기 어려운 환자는 최대 15%에 이르는 것으로 보고된다.
비스타틴 계열 약물 희망될까
지난 1월에는 이런 환자를 위한 새로운 기전의 치료제가 식품의약품안전처 허가를 받아 기대를 모은다. 다만, 실제 약을 사용하기까지는 1년여의 시간이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
‘PCSK9 억제제’라 불리는 이 치료제를 스타틴으로 치료에 실패한 가족성 고콜레스테롤혈증 환자에게 투여한 결과, 24주 후 68.2%가 LDL-콜레스테롤을 조절할 수 있게 됐다.
미국과 유럽에서도 이 치료제는 기대를 모은다. 유럽심장학회(ESC)는 고콜레스테롤혈증 고위험군에게 이 치료제를 사용하라는 내용으로 가이드라인을 개정했다.
이미 가이드라인을 통해 스타틴이 듣지 않는 환자에게 이 치료제를 사용하라고 권고한다. 미국심장학회(ACC) 역시 LDL-콜레스테롤이 조절되지 않는 환자에게 이 치료제를 사용하라고 권고하고 있다.
제약사 관계자는 “현재 정부와 치료제의 가격을 결정하기 위한 협상을 하고 있다”며 “이르면 올해 말, 늦어도 내년 초에는 새 치료제의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