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3세 고모씨는 일상 생활에서 위험할 뻔한 위기를 몇 차례 넘겼다. 노인성 난청이 심해 지하철 소음이나 사이렌 소리를 잘 못 듣기 때문이다. 상대방의 대화도 입 모양을 보고 겨우 의미를 판단하는 정도다. 이 때문에 못 듣는 서러움, 주변의 냉랭함, 대화의 단절로 마음고생이 심하다. 국민건강보험 일산병원 이비인후과 최현승 교수는 “노령화 사회에 접어들면서 노인의 난청 발생이 증가하고 있다”고 말했다.
우리가 매일 소리를 들을 수 있는 건 귓속에 있는 기관인 외이, 중이, 내이와 신경전달 경로 사이에 잘 짜여 진 시스템 덕분이다. 이 과정에서 문제가 발생하면 청력의 감소, 즉 난청이 생긴다. 난청은 전음성과 감각신경성으로 나눈다.
전음성 난청은 외이, 고막, 중이 같은 소리를 전달해주는 기관에 문제가 생겨 음파가 정상적으로 전달되지 않을 때 발생한다. 고막의 파열, 귀지가 외이도에 꽉 차있을 때, 외이도염, 급·만성 중이염, 선천 기형 때문에 주로 나타난다. 대부분 소리를 증폭시키는 중이에 이상이 있어 소리 크기가 작다고 호소한다. 그래서 소리를 크게 말하면 불편함이 덜하다고 느낀다.
감각신경성 난청은 전달경로는 정상이지만 달팽이관이나 청신경이 고장 난 경우다. 달팽이관 내부의 청신경 손상, 뇌에 이르는 신경의 손상, 종양 때문에 발생할 수 있다. 달팽이관 내부의 청신경 세포나 소리를 전달하는 신경에 이상이 생겼기 때문에 음에 대한 민감도가 떨어진다. 소리를 들을 순 있으나 말소리를 알아듣기 힘든 증상을 토로한다.
▲ 사진 중앙포토 |
방치하면 우울증·치매 발병 위험 커
난청 환자의 절반은 60세 이상 고령층이다. 실제로 국민건강보험공단 통계(2013년 기준)에 따르면 전체 연령대에서 60대 이상은 44.5%(12만5475명)로 가장 많았다. 2008년과 비교했을 때 43.1%(9만5876명)에서 30.9%가 늘었다.
노인의 난청은 노화에 따른 퇴행성 변화로 생기는 청력 감소를 의미한다. 청력 감소는 30대부터 시작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최현승 교수는 “65세 이상이 되면 양측 귀에서 대칭적인 형태의 청력 저하를 보인다”고 설명했다.
문제는 노인성 난청을 노화 과정으로 여겨 방치하는 사례가 많다는 점이다. 전문가들은 적절한 치료를 받지 못하면 우울증·치매 같은 문제가 발생해 건강한 노후를 방해할 수 있다고 경고한다. 미국 존스홉킨스대 의대와 국립노화연구소 공동연구팀이 발표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경도 난청을 겪는 노인은 청력이 정상인 노인보다 치매 발생 확률이 1.89배 높았다. 청각을 담당하는 뇌 부위의 퇴화 속도가 빨라지면서 인지력·기억력이 덩달아 감소하기 때문이다.
난청이 심리적인 변화를 일으키는 것도 문제다. 나이가 들면 상실감이나 외로움을 느끼기 쉽다. 난청은 이런 심리 상태를 더욱 악화시키는 요인 중 하나다. 잘 들리지 않기 때문에 대화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지 못하고 사회활동이 점차 줄어든다. 고립감과 소외감을 호소하다 우울증으로 악화하기 십상이다. 강동경희대병원 이비인후과 변재용 교수는 “사람마다 청력 손실 정도가 다르다. 이비인후과 전문의와 상담 후 적절한 치료를 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보청기 효과 없을 땐 인공와우 이식술 고려
노인의 난청은 조기 발견이 가장 중요하다. 시력이 안 좋으면 안경을 쓰듯이 청력이 안 좋으면 보청기를 착용한다. 중이염 같은 질환을 동반한 난청은 이비인후과 치료로 받으면 청력을 회복할 수 있다. 보청기를 착용해도 효과가 없을 땐 인공와우 이식술을 고려할 수 있다.
인공와우란 귀 안과 바깥에 기계를 설치해 소리를 들을 수 있도록 하는 인공 청각장치다. 귀 안에는 외부 소리를 뇌로 전달하는 와우(달팽이관)가 있는데, 이를 대신할 수 있는 내부기계와 외부소리를 내부기계로 전달해주는 외부기계를 설치해 청력을 개선한다. 인공와우는 보청기로도 효과가 없는 고도난청 이상의 환자에게 실시한다.
인공와우 이식 후에는 상당기간 재활치료가 필요하다. 그래서 아주 심하지 않은 환자들도 미리 이식술을 받는 경우가 있다. 변재용 교수는 “개개인마다 재활치료의 결과는 다르지만 말을 배운 후에 고도난청이 온 경우, 난청기간이 짧은 경우, 나이가 어릴수록 예후가 좋다”고 강조했다.
이어폰 장시간 쓰면 청각세포 손상 위험
젊은 층 역시 안전지대가 아니다. 큰 소음에 장기간 지속적으로 노출돼 청각세포가 손상된 소음성 난청이 많아져서다. 예전에는 소음이 많은 작업장에서 근무하는 사람들의 직업병이었다. 요즘에는 이어폰 과용, 소음 증가, 스트레스로 인해 10대 청소년에게도 발생하고 있다.
소리가 제대로 안 들리고 어지럼증, 이명, 수면장애, 집중력 저하가 나타난다. 극단적인 경우 청력을 잃을 수 있다. 특히 초기엔 고음을 인지하는 기능만 떨어져 조기 발견이 어렵다. 귀가 먹먹하거나 ‘삐’ 소리가 나는 증상이 느껴진다면 빨리 전문의를 찾는 게 현명한 방법이다. 악화 원인을 피하고 필요 시 보청기, 청각재활 같은 치료를 받아야 한다.
특히 청력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잘못된 생활습관을 개선하는 게 급선무다. 이어폰은 공기의 저항을 거의 받지 않고 고막에 직접적으로 충격을 보낸다. 이어폰보다는 헤드폰을 사용하는 편이 낫다. 하루 1시간 이하로 음악을 듣고 장시간 사용해야 한다면 1시간 마다 5~10분 정도 귀에 휴식을 주는 게 좋다.
갑자기 귀 먹먹하거나 말소리 울리면 병원 찾아야
중·장년층은 돌발성 난청에 주의해야 한다. 확실한 원인 없이 감각신경성 난청이 수 시간 또는 2~3일 이내에 갑자기 발생한다. 주로 바이러스 감염이나 스트레스를 받고 잠을 못 잤을 때, 몸 상태가 안 좋으면 귀 부분의 혈액순환에 문제가 생겨 발생한다. 대부분 한쪽 귀에 발생하고 30~50대에 가장 많이 나타난다.
갑자기 귀가 먹먹하거나 말이 울려 들리고 TV소리를 자꾸 키우게 된다. 이 중 한가지라도 48시간 이상 계속된다면 곧바로 병원을 찾아야 한다. 초기에 병원을 찾으면 약물 치료로 회복될 가능성이 크다.
일반적으로 돌발성 난청 환자의 3분의 1만 청력을 완전히 되찾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청력의 회복 정도는 약물 치료의 시작 시기와 초기 청력 감소 정도에 따라 크게 좌우된다. 돌발성 난청은 응급질환의 개념이므로 가장 빠른 시간 내 병원을 방문해 조치를 받는 게 가장 중요하다.
※난청 체크리스트
-TV 소리를 너무 크게 해 주위 사람들이 불평한 적이 있다
-전화 통화하는 데 어려움이 있다
-소음이 있는 곳에서 소리를 듣는 데 어려움이 있다
-둘 이상의 사람과 대화를 하는 데 어려움이 있다
-상대방 대화를 이해 못 하거나 엉뚱한 반응을 한 적이 있다
-상대방에게 대화 내용을 다시 말해 달라고 부탁한다
-상대방이 중얼거리거나 정확하게 말하지 않는 것처럼 보인 적이 있다
-특정 소리가 너무 크게 느낀 적이 있다
-아이나 여성의 말을 이해하는 데 어려움이 있다
*3개 이상의 질문에서 ‘예’라고 답했으면 전문의 검진을 받는 것이 좋다
자료: 미국국립보건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