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로서 치매를 근본적으로 치료하는 방법은 없다. 최근 치매치료제 개발에 뛰어들었던 화이자·MSD 등 글로벌 제약사가 잇따라 신약 개발에 실패하면서 '치매 정복'에 대한 희의론마저 나오는 상황이다. 전문가들은 "아직까지 치매는 예방이 최선의 치료"라 입을 모은다.
치매 예방, 경도인지장애부터 시작해야
치매는 다양한 원인으로 뇌기능이 손상되면서 ▶인지 기능이 저하되고 ▶일상생활에 지장이 나타나는 상태를 의미한다. 인지 기능은 기억력·공간지각력·계산능력·판단력 등 지적 능력을 가리키는 말이다. 기억력이 먼저 떨어지고 연이어 다른 인지기능이 저하돼 결국 스스로 일상생활이 어려운 단계로 발전한다.
치매는 진행성 질환이다. 초기 기억력 저하 등 인지장애가 발생할 때 적극적으로 대처하지 않으면 뇌세포가 서서히 파괴돼 결국 치매로 악화한다. 기억력 등 인지기능이 줄지만 일상생활에 지장이 없는 시기를 '경도인지장애(Mild Cognitive Impairment, MCI)'로 구분해 관리하는 배경이다. 동년배의 정상적인 노인은 매년 1~2% 정도가 치매 진단을 받는다. 반면 경도인지장애 노인은 매년 10~15%가 치매로 발전한다.
중앙치매센터에 따르면 우리나라 65세 이상에 경도인지장애 환자는 152만1835명으로 노인 5명 중 1명(22.4%)은 치매 전 단계로 추정된다(2017년 기준). 문제는 경도인지장애를 단순 노화로 인한 건망증으로 오해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는 점이다. 이를 구분하는 몇 가지 방법이 있다.
힌트 줘도 모르면 경도인지장애 가능성 커
첫째 건망증은 자신이 경험한 일 중 일부를 잊어버리고 힌트를 주면 바로 기억해 낸다. 반면 경도인지장애는 자신이 경험한 일 전체를 잊어버리고, 또 그런 사실 자체를 힌트를 줘도 떠올리지 못한다.
예컨대 부모님과 주말에 만나기로 했는데 부모님이 약속을 어겼다고 하자. 이때 "제가 지난주에 전화해서 바다보러 가기로 했잖아요"라고 힌트를 줄 때 “아 맞다. 미안해"라고 답하면 건망증이다. 반면 "우리가 언제 통화를 했었니"라던가 "약속을 언제 잡았니"라는 반응을 보이면 경도인지장애일 가능성이 크다. 경도인지장애의 기억력 저하는 특히 최근에 경험한 사실이 뇌에 저장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둘째 경도인지장애는 기억력 저하와 함께 다른 인지기능 저하가 동반될 수 있다. 성격이 변하거나 언어·공간지각력·계산력 등이 함께 떨어지는 식이다. 반면 건망증은 이런 증상을 동반하지 않는다. 60세 이상이면서 기억력이 줄고 행동 등 다른 변화가 함께 나타나면 인지기능검사 등을 받는 것이 좋다.
다행히 지난해 60세 이상에서 간이신경인지검사(일명 MMSE) 등 선별검사 결과 치매가 의심되는 환자는 기억력·언어능력·시공간지각능력 등 인지영역을 평가하는 신경인지검사에 건강보험이 적용돼 환자 부담이 크게 줄었다. 이에 더해 올해부터는 경도인지장애 진단을 받은 후 원인을 찾기 위해 실시하는 뇌 MRI 검사에도 건강보험이 적용됐다. 경도인지장애 환자는 뇌 MRI 검사비용의 30~60%만 부담하면 된다.
또 전 국민을 대상으로 하는 국가건강검진 인지기능검사의 경우 만 66세부터 4년 주기로 시행하던 것을 2년마다 받을 수 있게 주기가 단축됐다. 15개 항목의 인지기능검사 시행 후 치매가 의심되면 치매안심센터로 연결해 의료진 상담이나 검사, 약제비 지원 등의 관리를 받을 수 있다.
경도인지장애는 원인에 따라 퇴행성, 혈관성, 대사성, 외상성 등으로 구분된다. 이에 맞춰 인지훈련·인지재활 등의 치료를 받거나 고혈압·당뇨병 등 위험인자를 관리하고 ▶신체 활동(운동) ▶두뇌 활동 ▶스트레스 감소 ▶식단 조절 등 4대 생활습관 교정에 힘쓰면 치매로 진행되는 속도를 늦추거나 아예 치매의 발생을 억제하는데 도움이 된다.
뇌 건강에 좋은 음식으로는 호두·잣·땅콩 등 견과류가 꼽힌다. 견과류에는 손상된 뇌세포 회복을 돕는 레시틴과 칼슘, 세포막을 구성하는 불포화 지방산 등 다양한 영양소가 함유돼 있다. 카레의 주원료인 강황의 커큐민(테라큐민)도 기억력 감퇴나 뇌혈관 질환 예방에 도움이 된다. 박정렬 기자 park.jungryul@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