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도인지장애 19명, 에스트로겐·프로게스테론 병용
치료 그룹에 속한 19명에게는 에스트라디올 젤(0.1%)을 0.5㎎에서 2㎎까지 점차 용량을 늘려가며 매일 팔뚝에 바르게 했다. 치료 3개월 후부터는 매일 경구용 미분화 프로제스테론 100㎎을 복용하도록 했다. 이와 함께 6개월마다 여러 인지기능 검사(K-MMSE, MoCA-K)를 실시하며 2년간 추적 관찰했다.
2년 후 최종 연구를 마친 35명 중 17명에서 치매가 관찰됐다. 치료 그룹 18명 중 8명(44.4%), 비치료 그룹에서는 17명 중 9명(52.9%)이 치매로 진행돼 치료 그룹의 치매 진행률이 조금 더 낮았다. 인지기능 검사 결과도 같은 경향성을 보였다.
치료 그룹의 MoCA-K(한국형 몬트리올 인지평가) 점수가 더 천천히 떨어져 18개월부터는 통계적으로 유의미한 격차가 나타났다. 24개월째 평가 결과에서는 치료 그룹이 비치료 그룹과 비교해 MoCA-K 점수 3.85점, K-MMSE(간이정신상태검사)에서도 3.26점 앞섰다. 점수가 높다는 것은 인지 기능이 더 높다는 것을 뜻한다. 연구를 진행한 윤병구 교수는 “MoCA-K 검사는 경도인지장애에서 병의 진행을 파악할 수 있는 가장 우수한 검사”라며 “호르몬요법을 받은 사람들에서 인지 기능이 덜 저하됐음을 보여주는 확실한 증거”라고 설명했다.
호르몬 치료 그룹, 2년 후 치매 진행률 낮아
경도인지장애는 자연스러운 노화와 치매의 중간 단계다. 노인 인구의 4분의 1이 여기에 해당할 정도로 흔하다. 경도인지장애가 있으면 매년 20% 정도가 알츠하이머 치매로 악화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경도인지장애에서 치매로 발전하는 것을 늦추려는 연구가 계속 이어지고 있지만 현재까지는 경도인지장애를 치료할 약물은 없다.
호르몬요법은 폐경기 여성에서 여성호르몬의 결핍으로 나타나는 안면홍조·불면증 등을 경감시키기 위해 호르몬을 투여해 치료하는 방법이다. 윤 교수는 “호르몬요법을 한 가지로 잘못 알고 있는 사람들이 있는데 투여 방식(피부·경구·주사 등)과 용량에 따라 다양하게 조절이 가능하고 그에 따라 효과도 다르다”며 “이번 연구는 폐경과 관련된 장기적인 질병 중 경제적·심리적 부담이 큰 ‘치매’의 속도를 늦추는 목적으로 경피·경구 호르몬제를 병용한 치료법을 사용한 것”이라고 말했다. 폐경 후 발병 위험이 높아지는 질환으로 골다공증, 심혈관계 질환 및 치매가 있으며 폐경이 일찍 올수록 치매 위험이 높은 것으로 알려졌다.
50대 호르몬요법, 사망률 낮출 만큼 '안전'
그는 또한 “호르몬요법이 유방암 발병을 높인다는 오해가 있지만 18년간의 국제적 대규모 조사를 통해 오히려 에스트로겐이 유방암 위험을 낮추고 50대에서는 사망률을 감소시켰다”며 “호르몬요법의 안전성을 확인한 셈”이라고 말했다.
이번 연구는 안전성에 대해 논란이 있던 호르몬요법을 치매 전 단계에서 예방적 치료로 사용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줬다는 데 의미가 있다. 윤 교수는 “50~60대 젊은 경도인지장애 자체가 발견이 어려운 만큼 참여자 수가 많은 연구는 아니지만 결과적으로 호르몬요법이 인지장애의 속도를 늦췄다는 것을 최초로 보여줬다”며 “이제 첫 단추를 끼운 만큼 대규모 후속 임상연구 등을 통해 치매의 진행 억제 효과가 밝혀질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한편 이번 연구는 ‘북미폐경학회지(Menopause)’ 최근호에 게재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