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를 위한 디자인이란 사용자 개개인을 만족하는 디자인이어야 한다.

노미경 공간디자이너 대표 2015.12.03 19:38

   
▲ 노미경 위아카이 대표

요즘 지하철역의 개찰구 중에는 입구의 폭이 넓고 별 다른 가로막이가 없는 곳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노약자들이 힘겹게 굵은 쇠막대를 밀고 드나들지 않아도 된다. 예전에는 장애인 출입구만 널찍하게 만들었는데, 이제는 모든 개찰구가 편리한 출입이 가능하도록 만들어졌다.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이용할 수 있는 시설처럼 사용자의 구분과 상관없이 모두가 사용하는 시설이나 장비의 디자인이 늘어나고 있다. 이러한 디자인은 ‘유니버셜 디자인(Universal Design)’이라고 한다. 유니버셜 디자인은 미국의 로널드 메이스가 처음 주장한 것인데, 장애의 유무나 나이와 사회 환경 등과는 상관없이 모두가 이용할 수 있는 디자인을 말한다. 길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바닥이 낮고 출입구에 계단이 없는 저상버스도 유니버셜 디자인의 산물이라 할 수 있다. 저상버스는 장애인이나 노약자가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만들어졌다.

 

유니버셜 디자인 7가지 원칙

노스캐롤라이나 주립대학의 유니버셜 디자인 센터에서 제시한 유니버셜 디자인의 7가지 원칙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공평한 사용(equitable use)이다. 차별이나 불안감 등을 느끼지 않고 누구라도 사용할 수 있어야 한다. 앞서 말한 저상버스가 사례라 할 수 있다. 둘째, 사용의 융통성(flexibility in use)이다. 다양한 환경에서도 자유롭고 편리하게 사용하는 것이다. 예컨대 오른손잡이나 왼손잡이가 모두 쓸 수 있는 양손가위가 융통성을 갖춘 디자인이다. 셋째, 간단하고 직관적인 사용(simple and intuitive)이다. 그림으로 설명되어 있는 표지판이 쉽게 볼 수 있는 직관적 사용의 디자인이다. 넷째, 쉬운 정보의 이용(perceptive information)이다. 숫자를 크게 표시한 키패드를 디자인한 휴대폰을 예로 들 수 있다. 다섯째, 사고의 포용(tolerance for error)이다. 의도하지 않은 오류가 발생했을 때 쉽게 원상복귀를 할 수 있거나 미리 이러한 사고를 예방하는 것이다. 투명한 다리미나 컴퓨터의 되돌아가기 기능 등이 대표적인 사례이다. 여섯째, 신체적 부담의 경감(low physical effort)이다. 적은 힘으로도 문을 여닫을 수 있는 레버식 손잡이는 힘을 가하는 동작을 최소화할 수 있다. 일곱째, 사용을 위한 적당한 공간의 확보(size and space for approach and use)이다. 앞서 말한 물리적인 장애물을 제거한 넓은 지하철 개찰구가 대표적이다.

 

병원이야말로 유니버셜 디자인의 집합체

병원 공간도 다양한 사용자가 모이는 곳이니 유니버셜 디자인이 필요한 공간이다. 환자와 노약자들이 쉽고 편리하게 공간을 이용할 수 있는 디자인이 곳곳에 이뤄져야 하는 것이다. 당장 병원 출입문과 입구의 보도 턱에서부터 유니버셜 디자인은 적용되어야 한다. 힘겹게 올라서야 하는 보도 턱을 낮추거나 없애고, 출입문도 가급적 자동문으로 바꿔야 하는 이유도 모든 사용자가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

사용 목적에 따른 공간의 구분을 용이하게 하려고 각각 다른 색상을 적용하는 것도 유니버셜 디자인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내가 그동안 병원 디자인을 하면서 가장 많이 신경 쓰는 것 중의 하나인 ‘동선’의 단순화와 직관성 확보도 유니버셜 디자인이다. 오래된 병원이 증축을 거듭하면서 병원 내부의 동선이 마치 미로처럼 짜인 경우가 많다. 복잡한 동선을 쉽고 빠르게 목적지로 향하게 동선을 새로 구축하는 것은 유니버셜 디자인의 원칙에 부합하는 것이다.

   
▲ 휠체어를 탄 환자가 안전하고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는 세면대와 수전으로 휠체어 높이에 맞춰 접근이 용이하게 디자인 되어 있다.. Spaulding Hospital (미국소재) 출처 : http://www.archdaily.com/443408/spaulding-hospita-perkins-will
   
▲ 손잡이를 잡고 미끌어지지 않도록 방지하여 굴곡을 주고, 표면도 차갑지 않은 소재를 적용한 유니버셜 디자인 손잡이. (고령친화종합체험관 전시제품)

결국 사람이다

오늘 언급한 유니버셜 디자인 역시 사용자 중심 디자인이다. 어떤 영역의 이름으로 구분될 될지라도 이러한 디자인의 맥락은 바로 사람이다. 모든 사람이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는 디자인을 추구하고 있다. 공간디자인에서 다양한 디자인들이 거론되면서 더 세부적으로 언급되는 이유들도 맥락적으로는 좀 더 사람 중심의 디자인을 만들려고 하는 노력과 연구의 결과인 셈이다.

공간은 가장 평등하고 모두의 것이어야 한다. 성별과 장애의 유무, 재력과 능력의 차이에 따라 공간 사용의 차별성이 이루어져서는 안 된다. 더군다나 병원이라는 공간은 더욱 더 평등하고 사용이 용이한 곳이어야 한다. 사람이 중심이 되는 공간, 사람이 존재하는 공간을 만들기 위한 노력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고, 사람 중심의 디자인도 꾸준히 진화하고 있는 중이다. 그래서 유니버셜 디자인은 어쩌면 사람에 대한 깊은 관심과 애정이 뒷받침되어야 가능한 디자인이지 않을까.

모두를 위한 디자인은 획일적으로 적용하는 디자인이라기보다 개개인의 욕구를 만족시키는 디자인이어야 한다는 뜻이다. 특별히 우대하는 사용자를 따로 생각하지 않고 개별적인 만족감을 안겨주는 공간디자인이어야 한다. 모두를 위한, 그러나 개인의 욕구를 충족시켜줘야 하는 디자인이 될 때, 공간의 평등성은 획일성이 아닌 개별성의 충족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참고글 : https://www.ncsu.edu/ncsu/design/cud/about_ud/udprinciplestext.ht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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