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우리나라는 '약 공화국'이라고 불렸습니다. 그만큼 약을 많이 찾고 많이 처방했습니다. 예로부터 보약이라는 개념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건강한 삶을 유지하는 데 있어 약은 시작과 끝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하지만 약에 대한 정보는 제한적이고, 궁금한 부분은 많습니다. 중앙일보 헬스미디어에서는 약과 관련된 '알아두면 쓸 데 있는' 약 관련 지식을 다루는 건강 포스트 [약 이야기]를 진행합니다.
'전체 인구의 90%가 평생 동안 적어도 한 번은 두통을 경험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만큼 두통은 흔한 증상입니다. 결국 두통약, 즉 진통제는 누구에게나 일상에서 가장 자주 복용하게 되는 약이라고 할 수 있겠죠. 하지만 약국에 가면 어떤 진통제를 사야할 지 고민하게 됩니다. 그래서 그냥 약국에서 약사가 추천하는 약을 받아들고 나오는 경우도 있습니다. 첫 번째 '약 이야기'는 진통제(두통약)의 선택·복용법에 대해 다뤄보겠습니다.
우선 진통제에는 크게 두 가지 종류가 있습니다. 해열진통제와 소염진통제인데요. 모두 중추신경에 작용해 통증을 잊게 해 주는 효과가 있습니다. 두 약의 차이점을 말하자면, 해열진통제에 염증을 억제하는 항염 기능이 덧붙여진 것이 소염진통제라고 보면 됩니다. 즉 소염진통제는 해열, 진통, 항염 기능이 모두 포함된 약이죠.
그래서 일각에서는 소염진통제가 좀 더 독한(?) 약이라고 보기도 합니다. 그래서 일반적으로 그냥 통증만 있을 땐 소염진통제보다 해열진통제를 먹는 게 낫다고 말합니다. 굳이 소염 성분까지 더 먹을 필요 없다는 말이죠. 하지만 이 부분은 크게 신경 쓸 필요 없습니다.
두통약을 먹는 대부분의 진통제에는 소염성분이 있습니다. 두통의 원인 자체이 염증인 경우도 있기 때문이죠. 가장 많이 먹게 되는 진통제는 '아세틸살리실산', '아세트아미노펜', '이부프로펜' 입니다. 이것은 성분 이름이고, 상품명으로는 각각 '아스피린', '타이레놀', '부루펜'이 대표적입니다. 이들 성분을 원료로 하는 진통제(상품명이 다른)는 굉장히 많습니다. 또 여러 성분을 섞은 약들도 있습니다. 이들 중 어느 것을 먹어도 잘못된 선택은 아닙니다.
그렇다고 아무 약이나 먹어도 된다는 말은 아닙니다. 약 선택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이 약이 약을 먹는 목적에 얼만큼 부합하느냐' 입니다. 즉 나에게 잘 듣는 약인지가 가장 중요합니다. 다른 사람한테 잘 듣는 약이 나한테 잘 들으리란 법은 없습니다. 그래서 약은 기본적으로 남에게 빌리지 말라고도 하죠.
그러면 나한테 효과가 있는 약은 어떻게 알아볼 수 있을까요. 물론 먹어보기 전엔 모릅니다. 경험을 바탕으로 해야 하는 게 아쉽긴 합니다.
약 복용 후 2시간이 지나서 두통이 남아 있는지 없는지를 체크합니다. 약을 먹은 뒤 적어도 30분 이후부터는 본격적으로 약효가 발휘됩니다. 보통 약을 먹은 뒤 시간이 지나서 통증이 남아 있으면 '약이 안 듣나?' 하고 생각하거나 약을 더 먹게 됩니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는지도 잘 모를 때가 많습니다. 2시간을 기준으로 확인해 보는 것이 좋습니다. 실제 병원에서도 약효를 평가할 때 2시간을 기준으로 평가하기도 합니다.
만약 이때도 두통이 있다면 이 약은 '나에게 잘 안 듣는 약'이라고 보면 됩니다. 약을 먹고 시간이 지나서 약효가 떨어지는 것과 약효가 없는 것은 엄연히 다릅니다. 약효가 떨어지는 것은 통증이 없어진 뒤 통증이 재발할 때를 말합니다.
효과가 없다면 다른 약을, 다른 성분의 약으로 바꿔야 합니다. 같은 약을 더 먹는 대신 바꾸는 편이 낫습니다. 이렇게 자신에게 효과가 있는 '맞는 약'을 찾는 것이 필요합니다. 만약 잘 듣지 않는 약을 계속 먹으면 만성두통으로 악화하게 됩니다.
약을 먹었다면 약효를 높이는 부가적인 방법도 필요하겠죠. 특별한 건 아닙니다. 다만 평소에 무시하게 되는 것들입니다.
첫째, 악화요인을 제거하는 겁니다. 두통이 생기게 된 배경에서 벗어나는 것이죠. '그걸 할 수 있는 상황이면 약을 왜 먹나'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악화요인은 유발요인과는 다릅니다. 약효를 높이는 데는 악화요인을 없애는 것이 분명 필요합니다. 스트레스를 풀거나, 수면 패턴을 바꾸거나 보충하는 겁니다.
식사를 하는 것도 해결책이 될 수 있습니다. 공복이 오래 지속되면 두통이 생기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먹을 것을 먹지 않으면 혈당치가 낮아지고, 뇌는 이에 대한 반응으로 혈당을 공급하기 위해 뇌혈류 속도를 높이려 합니다. 이 과정에서 뇌혈관이 수축하고 혈관 주변의 말초신경을 자극해 두통이 생깁니다. 이런 두통이 잦다면 많은 양을 한꺼번에 먹는 경우를 줄이고, 조금씩 여러번 나눠서 먹는 것이 좋습니다.
둘째는 조금 아플 때 약을 먹는 겁니다.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두통이 생기면 일단 참아봤다가 진통제를 먹습니다. 아플 때 바로 먹는 습관이 약을 자주 먹는다는 느낌을 주고, 약 내성에 대한 우려를 부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오히려 약을 늦게 먹는 게 잘못된 거라고 말합니다. 통증을 키울 수 있기 때문이죠. 그래서 통증이 올 것 같은 느낌이 들 때 예방적으로 먹는 것도 나쁘진 않습니다.
이럴 땐 약 대신 병원을
근데, 두통약을 먹는 것 자체가 잘못된 선택인 경우도 있습니다. 약을 먹는 행위가 다른 질환을 가릴 수 있기 때문인데요. 바로 뇌종양·뇌출혈·뇌수막염·뇌압상승 등입니다. 두통 자체가 흔한 증상이기 때문에 관련된 질환은 정말 다양합니다.
그래서 두통과 함께 나타나는 증상이 어떤 것이냐에 따라 약 대신 병원 진료를 택하는 것이 현명할 수 있습니다. 가장 대표적인 동반증상은 '구토'입니다. 구토 자체가 위험한 것은 아닙니다. 단, 구토가 다른 심각한 감별질환 여부를 판단하는 포인트가 됩니다. '국소적인 신경 이상'도 두통 시 주의깊게 지켜봐야 할 증상입니다. 말이 어눌해 지거나, 한쪽이 마비되는 듯 하거나 복시(1개 물체가 2개로 보이는 것)가 생기는 증상 등입니다.
특히 이런 심각한 질환이 있을 때의 두통은 일반 두통과 달리 '아주 갑작스런' 두통이라고 합니다.
여기서 잠깐! 두통이 있을 때 '여성용 진통제'를 먹어도 되는지 궁금했던 적이 있을 겁니다.
결론은 여성이든 남성이든, 두통만 있을 때 먹어도 무방합니다. 여성용 진통제는 일반 두통제 성분에 '파마브롬'이라는 성분이 추가된 것입니다. '파마브롬'은 이뇨제 성분입니다. 따라서 성별에 관계 없이 두통약으로 먹어도 괜찮습니다. 다만 혈압약·심장약을 복용하는 환자는 복용하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