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버 건강, 지켜야 산다]#24 할마·할빠도 좋지만 하루 종일 아이 돌보면 없던 병 생겨

권선미 기자 2017.08.25 17:44

건강을 챙기는 황혼 육아법

일러스트 최승희 choi.seunghee@joongang.co.kr


할마(엄마 같은 할머니)·할빠(아빠 같은 할아버지) 전성시대입니다. 최근 맞벌이 가구가 늘면서 손자·손녀를 돌보는 조부모, 즉 황혼 육아 족이 늘고 있습니다. 맞벌이 부부 10쌍 중 5쌍은 남에게 아이를 맡기기 불안하다는 이유로 조부모나 친인척에게 양육을 부탁하고 있다는 조사결과도 있습니다(육아정책연구소·2015).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손주인데 뭐가 힘드냐’고 말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하지만 아이를 돌보는 육아는 상당한 노동력이 필요한 일입니다. 나이가 들어 체력이 약해진 상태라면 아이를 쫓아다니면서 돌보는 육아 자체가 몸에 부담이 됩니다. 또 자신만의 시간을 빼앗겨 육아 우울증에 시달리기도 합니다. [실버건강, 지켜야 산다] 스물 네 번째 주제는 '건강을 챙기는 황혼 육아법'입니다.
 

내 몸도 아픈데 육아까지…애 엄마 퇴근 시간만 기다려
 
“애 보는 할머니들은 다 그럴 거야. 여섯시만 지나면 나도 모르게 창밖이나 시계만 보고 있어. 애 엄마가 언제 집에 오나 하고….”황혼 육아 2년차 김순영씨(가명·61·서울 강동구)
 
육아로 골병이 드는 노인이 늘고 있습니다. 바로 손주병입니다. 육아를 맡은 노년층이 가장 흔하게 겪는 질병은 척추·관절질환입니다. 사실 육아는 손이 많이 가는 일입니다. 때마다 기저귀를 갈고, 아이를 쫓아 집안 곳곳을 따라 다니면서 밥·간식을 챙겨 먹이는 일을 매일 반복합니다. 떼를 쓸 때마다 10㎏이 넘는 아이를 수시로 안거나 업어야 합니다. 틈틈이 어질러놓은 집안을 정리하는 일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황혼 육아는 신체 노화를 촉진합니다. 문제는 황혼 육아를 시작하는 50·60대는 건강 위험요소가 질병으로 나타나기 시작하는 나이라는 점입니다. 하루에도 몇 번씩 일어났다 앉았다 반복하면서 손목·허리·무릎 관절에 부담이 쌓입니다. 예를 들어, 허리를 구부려 아이를 들어 올리면 아이 체중의 10~15배의 충격이 허리에 가해집니다. 결국 전에 없었던 통증이 생기거나 이미 앓고 있던 관절염이 심해질 수 있습니다.
 

이 뿐만이 아닙니다. 심근경색 발생 위험을 높이기도 합니다. 2003년 미국 하버드대 보건대학원 연구팀은 4년 동안 일주일에 9시간 이상 손자·손녀를 돌보는 60세 전후 할머니 1만 3392명의 심장병 발생률을 조사했습니다. 그 결과 육아를 했던 할머니 그룹은 그렇지 않은 동년배 그룹보다 심근경색 발생률이 55%나 높았습니다. 연구팀은 만성적인 육아 스트레스가 혈압을 높이고 혈관을 손상시켜 심장에 해를 끼쳤을 것으로 분석했습니다.
 
우울증도 주의해야 합니다. 눈에 넣어도 안 아픈 손자·손녀지만 하루 종일 신경을 곤두세우며 돌보는 일은 또 다른 문제입니다. 아직 어려 대화도 통하지 않고, 떼를 쓰는 아이와 온종일 붙어있으면 누구라도 스트레스가 심해집니다. 게다가 아이를 돌보면서 활동이 제한되고 사회관계 형성이 단절돼 정신적 소외감도 잘 생깁니다. 자신의 삶에 초점을 맞추려는 상황에서 다시 영유아를 키워야 하는 상황 자체를 위기상황으로 인식한다는 의미입니다. 1997년 미국 유씨 버클리대 보건대학원의 연구를 보면 손자·손녀를 돌보는 노인들은 우울증에 걸릴 위험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수면장애도 흔합니다. 특히 밤낮을 가리지 못하는 생후 6개월 이하 영아를 돌본다면 잠을 제대로 자기 어렵습니다. 아이가 밤중에 깨서 보채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아기가 깰 때마다 '강제로' 일어나야 합니다. 결국 피로를 풀어야 할 밤에 충분히 쉬지 못하게 됩니다. 이런 상태가 반복되면 수면리듬이 흐트러져 숙면을 취하기 어려워집니다.
 

아이 돌보는 ‘규칙’ 정해라
 
건강을 챙기면서 아이를 돌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우선 생각을 긍정적으로 바꾸는 것이 좋습니다. ‘상황이 어쩔 수 없으니깐’혹은 ‘돈을 주니깐’, ‘시간이 남아서’같은 생각은 의무적인 돌봄 관계를 형성할 뿐입니다. 아이를 돌보면서 얻는 성취감이나 삶의 만족도도 떨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현실적으로 황혼육아를 피하기 어렵다면 몇 가지 규칙을 정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첫째, 아이를 돌보는 상한 시간을 정합니다. 일어나면서부터 잠들 때까지 24시간 돌보는 양육은 쉽게 지치기 마련입니다. 조부모가 손자·손녀를 돌보는 시간은 평균 주당 5.25일, 42.53시간입니다(육아정책연구소·2015). 일반 근로자의 근로시간과 맞먹는 노동 강도입니다. 육아는 하루 이틀 돌보고 끝나지 않습니다. 자신의 건강상태와 생활습관에 따라 실천 가능한 범위 내에서 돌보는 것이 좋습니다. 이를 통해 신체적 부담을 덜어내고 재충전하는 시간을 확보하기 위해서입니다. 예컨대 주말은 돌보지 않는다, 어린이집 하원시간 이후부터 4시간만 돌본다, 잠은 부모가 데리고 잔다는 식입니다.
 
둘째 신체 부담 주는 자세는 피하고, 허리·무릎 근육을 강화하는 운동을 합니다. 육아는 체력전입니다. 반복적으로 나쁜 자세를 취하면 만성적으로 피로도가 높아지고, 척추·관절에 무리가 갈 수밖에 없습니다. 아이가 어려 방바닥을 기어 다닌다면 쪼그려 앉아 돌보기보다는 아기침대에 눕혀 높이를 조절합니다. 아기를 안고 걸을 때는 팔을 벌린 채로 있기 보다는 몸 쪽으로 붙인 상태에서 움직이는 것이 어깨·팔꿈치·손목의 부담을 줄여줍니다. 가능한 아이를 업거나 안는 시간을 줄이는 것이 좋습니다. 평소 스트레칭을 꾸준히 해 약해지기 쉬운 근육을 강화하면 도움이 됩니다. 잠을 잘 때도 아이와 따로 잠을 재우기 어렵다면 아이가 낮잠을 잘 때 함께 잠을 자면서 부족한 수면을 보충합니다.
 
셋째 자신의 끼니를 잘 챙겨 먹습니다. 아이의 식사를 챙기다보면 끼니를 놓치거나 먹다 남긴 밥으로 대충 때우는 경우가 많습니다. 영양은 50·60대에 가장 중요한 건강요소입니다. 고기 같은 단백질과 신선한 채소 등을 충분히 챙겨 먹습니다. 넷째 육아 스트레스를 털어낼 외부 활동도 지속합니다. 육아는 간병과 비슷합니다. 아픈 사람의 곁을 떠날 수 없듯이 아이 주변에 늘 머물러 있어야 합니다. 자연스럽게 친구·지인과 연락이 끊기기 쉽습니다. 이렇게 사회활동이 단절되면 쉽게 소외감을 느끼고 우울증이 생깁니다. 한·두 시간이라도 자신만을 위한 시간을 확보하면 육아 스트레스를 줄여주는데 도움이 됩니다. 가족의 지지도 중요합니다. 아이를 돌봐주는 노고에 대해 감사하다는 마음을 말로 자주 표현합니다. 적절한 경제적 보상도 뒤따라야 합니다. 이 외에도 육아를 맡겼다면 집안일을 나눠 하는 식으로 부담을 덜어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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