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격이 급하고 산만하다는 이야기를 들으며 자랐다. 힘들게 대학에 들어갔지만 적응이 쉽지 않았다. 자꾸 딴 생각이 떠올라 수업을 따라가기 어려웠다. 친구를 사귀어도 대화를 길게 이어나갈 수 없었다. 혼자 있는 시간이 늘었다. 결국 자퇴했다. 우울증이 찾아온 것도 이즈음이다. 우울증은 좀처럼 떨어지지 않았다. 얼마 전 옮긴 병원에서 우울증 치료의 단서를 찾았다. 바로 ADHD(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였다. 자신을 평생 괴롭힌 ‘산만함’ 역시 단순한 성격이 아니라 질환이었다는 사실도 함께 깨달았다.
실제 ADHD 치료를 받고 있는 주민규(27·가명)씨의 사례다. 흔히 ADHD는 어렸을 때만 나타난다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주씨처럼 성인이면서 ADHD를 앓는 경우도 적지 않다. 실제 ADHD를 진단받은 아이의 70%는 청소년기까지, 50~65%는 성인이 돼서도 증상이 지속된다. 국내 유병률은 없지만, 전 세계적으로 성인 100명 중 4명(4.4%)이 ADHD를 앓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성인 ADHD의 증상은 소아청소년 시기와 조금 다르다. 소아청소년기에는 과잉행동이 주 증상인 반면, 성인기에는 충동성과 부주의 증상이 주로 나타난다. 성인 ADHD의 발견이 쉽지 않은 이유다. 실제 성인 ADHD 환자는 소아 환자와 달리 집중력 저하, 빈번한 건망증, 심한 감정기복 같은 증상을 호소한다.
성인 ADHD를 자각하기 어려운 또 다른 이유는 다른 정신질환과 혼동하기 쉬워서다. 대한소아청소년정신의학회가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108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성인 ADHD 환자 대부분(95%)이 우울장애, 불안장애, 중독, 수면장애 등 하나 이상의 정신질환을 동반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반대로 우울증 환자 731명을 조사한 결과에서는 절반 이상(55.7%)이 ADHD 환자로 의심됐다.
ADHD가 우울·불안장애로 이어질 가능성은 매우 크지만, 우울·불안장애 때문에 ADHD가 오는 사례는 드물다. 따라서 치료 역시 ADHD 치료가 우선이 된다. 소아청소년정신의학회 이소희 홍보이사는 “ADHD 치료만으로 우울증을 비롯한 동반 질환까지 치료됐다는 사례가 보고됐다”며 “두 가지 이상을 동시에 앓고 있다면 ADHD와 동반 질환을 함께 치료해야 효과가 좋다. 반면 우울증만 치료해서는 치료 효과가 그리 높지 않다”고 말했다.
소아청소년정신의학회 정유숙 이사장은 “성인 ADHD에 대한 인식이 매우 낮다”며 “전 세계 유병률을 감안할 때 국내 성인 ADHD 환자는 82만 명으로 추산되지만 이 가운데 실제 치료율은 0.76%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ADHD는 전두엽에서 도파민이라는 신경전달물질의 균형이 깨진 신경정신 질환”이라며 “우울·불안·중독 등 다른 정신질환으로 이어질 수 있으므로 정확한 진단과 치료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