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 부정적인 생각 땐 우울증 위험 2배 크다

김진구 기자 2017.03.06 08:54

커버스토리 마음의 병 키우는 ‘정신습관’

‘내가 그때 왜 그랬을까’ ‘나는 너무 못났어’ ‘과연 내가 할 수 있을까’. 누구나 한 번쯤 이런 생각을 하면서 자신을 돌아보고 반성한다. 하지만 이런 생각이 습관이 되면 곤란하다. 마음의 병을 키우는 씨앗이 된다.

 

습관이 자라서 성격으로 굳어지면 결국 우울·불안·공황장애나 중독 같은 정신질환으로 번지기 쉽다. 음주·흡연이 신체 건강을 좀먹듯 나쁜 ‘정신습관’은 건강한 마음을 갉아먹는다.

 

싹을 자르는 것이 필요하다. 성격 탓으로 돌리지 말고 습관 단계에서 교정해야 정신건강을 온전히 지킬 수 있다.

 

직장인 윤두섭(29)씨가 생각에 잠겨 있다. 나쁜 생각이 반복돼 습관이 되면 정신건강에 좋지 않은 영향을 끼친다. 조상희 기자

 

정신질환이 생기는 데는 나름의 배경이 있다. 배우자와의 사별이나 직장에서의 해고 같은 충격적인 사건, 고부갈등이나 직장 내 스트레스 같은 지속적인 압박이 우울장애·불안장애를 일으킨다. 그러나 이런 상황에서 모든 사람이 정신질환을 앓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이를 이겨내고 정신적으로 더욱 건강해지는 사람도 있다.

 

같은 스트레스라도 정반대의 결과를 낳는 차이는 바로 ‘정신습관’이다. 정신습관이란 비슷한 경험이 중첩돼 생긴 생각의 경향이다. 엎드려 자는 습관이 있으면 척추와 경추 건강을 잃기 쉽다. 평소 잘못된 생활습관이 신체 건강을 해치듯 나쁜 정신 습관이 정신건강을 해친다. 성격과는 개념이 조금 다르다.

 

성격을 만드는 재료가 정신습관이다. 정신습관이 완전히 굳어져 겉으로 드러나야 비로소 성격이 된다. 가령 사람들 앞에 서는 자리에서 실수를 거듭한다면 회피하려는 성향이 습관처럼 나타나고, 결국 소극적이고 신중한 성격이 된다. 바꿔 말하면 성격으로 드러나기 전에는 정신습관을 스스로 알아차리기가 쉽지 않다. 전문가들이 정신습관에 주목하는 이유다. 고대안암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조철현 교수는 “정신습관은 본인이 인지하지 못할 때도 작동한다”며 “부정적인 정도가 심하면 개인의 선택과 인간관계를 망치는 것은 물론 정신건강의학과 치료가 필요할 정도로 정신 건강을 해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나쁜 생각, 습관 되면 정신질환 위험


한두 번쯤 나쁜 생각이 든다고 해서 곧바로 정신습관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비슷한 생각이 오랫동안 누적됐을 때 습관이 되고 질환의 위험이 커진다. 담배를 한두 개비 피운다고 당장 폐암에 걸리지는 않지만 충분히 누적되면 폐암 위험이 크게 늘어나는 것과 마찬가지다. 고려대 심리학과 권정혜 교수는 “타고난 기질, 부모의 양육 방식, 성장 환경, 살아오면서 겪은 경험이 복합적으로 섞여 정신습관이 된다”며 “사소한 생각이 반복되면 점점 구체화되고 습관으로 굳어진다”고 말했다.

 

주부 양은하(59·가명)씨는 ‘남편이 나를 따돌린다’는 생각이 정신습관으로 굳어진 경우다. 요즘 들어 짜증이 늘었고 남편만 보면 이유 없이 화가 난다. 특히 직장생활 대신 동호회 활동에 푹 빠진 남편의 모습이 못마땅하다. 강북삼성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오강섭 교수는 “남편의 동호회 활동을 반대하는 것도 아니고 남편이 특별히 눈 밖에 날 행동을 한 것도 아닌데 볼 때마다 짜증이 난다는 것은 어딘가 사소한 원인이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양씨는 오 교수와의 상담에서 결국 그 원인을 찾았다. 문득 남편이 자신을 따돌린다는 생각이 든 이후로 같은 생각이 반복되면서 마음속 불만이 점점 커진 것이다. 오강섭 교수는 “양씨는 이런 생각이 반복되면서 습관으로 자리 잡았고, 우울장애 초기까지 악화됐다”며 “어떤 일이 정신질환까지 이어지느냐를 결정하는 중요한 요인은 바로 정신습관”이라고 설명했다.
 
한국인 절반, 정신습관 ‘고위험’


현대 사회에서 정신습관을 갖고 있는 건 지극히 보편적인 현상이다. 실제 우리나라 국민 거의 대부분이 하나 이상의 정신습관이 있는 것으로 최근 밝혀졌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이상영 박사팀이 국민 1만 명을 대상으로 정신습관 현황을 조사한 결과 97.2%가 편견·후회·절망·걱정·자기비하·도피 등 7개 영역 32개 습관 중 하나 이상 보유한 것으로 나타났다. 편견의 보유율이 90.9%로 가장 높았고, 후회(82.4%), 걱정(70.8%), 자기비하(60.1%), 절망(48.2%), 도피(47.6%)가 뒤를 이었다. 부정적인 정신습관이 있으면 우울장애나 불안장애 위험이 크다는 사실도 이 연구에서 확인됐다. 부정적인 정신습관이 있는 사람은 없는 사람에 비해 정신질환에 걸릴 위험이 우울장애는 최대 2.15배, 불안장애는 3.37배에 달했다.

 

이런 경향은 절망·자기비하·도피에서 두드러졌다. 특히 위험한 습관이란 의미다. 일례로 ‘일상적인 일을 하는 것도 지겹고 고통스럽다’(도피)는 정신습관이 있는 사람 10명 중 8명(76.6%)이 우울장애, 5명(44.5%)이 불안장애 위험군이었다. 이상영 박사는 “부정적인 정신습관은 외부에 대한 심리적인 방어 기제가 작동하는 과정에서 주로 형성되는데, 절망·자기비하·도피의 경우 자신에 대한 방어를 포기한 형태의 정신습관이기 때문에 심각성이 더하다”고 설명했다. 그는 “편견·후회·걱정의 경우 위험도는 비교적 낮지만 장기간 누적되면 정신건강에 악영향을 미치게 된다”고 덧붙였다.


정신습관 얼마든지 개선할 수 있어


잘못된 생각의 습관을 바꾸는 것은 가능할까. 물론 가능하다. 권정혜 교수는 “다행인 것은 정신습관도 습관이기 때문에 얼마든지 교정할 수 있다는 점”이라고 강조했다.

 

심리학계에서는 이미 이와 관련한 다양한 실험이 성공을 거뒀다. 가깝게는 2015년 미국 일리노이대에서 학생 135명을 대상으로 한 실험이 성공한 바 있다. 비교적 짧은 기간인 16주 만에 정신습관이 바뀔 수 있는지에 대한 실험이었다. 연구진은 학생들에게 정신습관 변화를 위한 과제를 내주고 매주 테스트를 진행했다. 과제는 크게 두 종류였다. 하나는 ‘적극적인 사람 되기’ 같은 모호한 내용이었고, 다른 하나는 ‘누군가를 만나면 먼저 악수를 청하기’ 같은 구체적 행동이었다. 물론 구체적인 행동을 지시한 실험군의 정신습관이 더 효과적으로 바뀌었다. 오강섭 교수는 “긍정적으로 생각하겠다는 마음만으로는 정신습관이 쉽게 개선되지 않는다”며 “구체적인 목표를 정하고 과학적으로 훈련해야 정신습관을 제대로 관리할 수 있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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