엉덩이뼈 부러진 노인, 절반이 두 달 내 숨진다

배지영 기자 2015.11.02 18:25

커버스토리 만성질환보다 무서운 낙상

   
▲ [일러스트=최승희 choi.seunghee@joins.com]

주부 김수연(37·서울)씨는 얼마 전 혼자 사는 모친(65)이 화장실에서 미끄러졌다는 소식에 가슴이 덜컹 내려앉았다. 아버지도 2년 전 계단에서 미끄러져 고관절이 부러졌다. 그뒤 아버지는 입원 두 달 만에 68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혈압이 약간 높을 뿐 건강 체질이었는데 낙상 합병증으로 일찍 돌아가실 줄은 상상하지도 못했다. 다행히 어머니는 다리뼈에 금이 간 정도에 그쳤다. 하지만 거동이 힘들어 간병인을 고용한 상태다.

 

   
▲ [자료=대한노인재활의학회?생명보험협회·손해보험협회]


만성질환 관리 잘해도 낙상 당하면 도루묵

노인 낙상은 이제 개인 삶의 질을 떠나 사회 문제가 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한 해 낙상으로 사망하는 65세 이상 노인은 83만여명이다. 교통사고에 이어 노인 사고 사망 원인 2위를 차지한다. 전체 사망원인으로는 암에 이어 5위다. 최근 열린 낙상예방심포지엄에서 강성웅 대한노인재활의학회 회장(강남세브란스병원 재활의학과 교수)은 "암·혈압·당뇨병을 아무리 잘 관리해도 한 번 넘어져 입원하면 멀쩡하던 노인이 불과 몇 달 만에 사망한다. 어떻게 보면 만성질환보다 더 무섭다”고 말했다. 낙상은 특히 날씨가 추운 11월과 2월 사이에 집중적으로 일어난다.

낙상의 이유로는 바닥이 미끄러워서(25%), 문이나 보도의 턱에 걸려서(17.9%), 어지러워서(17.9%)가 가장 많았다. 한양대병원 재활의학과 김미정 교수는 "안방에서 아침 또는 낮잠을 자고 일어날 때 손을 헛짚으면서 넘어지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화장실에서는 물기가 남아 있을 때, 떨어진 물건을 무리하게 잡으려고 할 때 미끄러져 넘어지는 사례가 많았다.

낙상으로 입원 시 일주일에 근육 10%씩 감소

가장 많이 다치는 부위는 무릎 허리 엉덩이(고관절)·어깨 발목·머리 순이었다. 하지만 어느 부위를 다쳤느냐에 따라 사망으로 이어지는 정도가 달랐다. 김미정 교수는 "낙상을 당하더라도 팔·손목 등 상지부위가 부러진 정도면 생명에 아무런 문제가 되질 않는다. 하지만 하지 쪽이면 상황이 달라진다”고 말했다. 사망으로 이어지느냐, 아니냐는 걸을 수 있느냐 없느냐에 달렸다는 것이다.

강남세브란스병원 재활의학과 박중현 교수

"다리가 부러졌을 뿐인데 두세 달 만에 돌아가실 정도로 상태가 악화한다는 사실을 대부분 이해하지 못한다”며 "하지만 노인은 젊은이와 달리 하루만 누워 있어도 근육 손실이 엄청나다”고 말했다.

근육 소실이 왜 생명을 위협할까. 근육 감소는 35세부터 완만하게 일어나다(매년 0.7%씩) 60세부터 두 배 이상(매년 2%씩) 빠르게 진행된다. 그래서 평균 80세의 근육은 60세의 절반 정도다. 그런데 낙상으로 입원하면 근육을 자극하는 활동이 없어 근육량이 급격히 준다. 박 교수는 "입원환자의 근육은 일주일에 10%씩 이상 감소해 한 달을 누워 있으면 입원 전에 비해 50%가 준다” 고 강조했다. 이 정도의 근육으로는 본인의 의지로 일어날 수 없다.

근육이 소실되면 몸에 큰 변화가 생긴다. 혈액과 수분이 몸통으로 집중되면 기관에 과부하에 걸린다. 젊은층은 곧 회복되지만 노령층에서는 과부하를 견디지 못해 이상을 일으킨다. 혈관과 내장기관, 그리고 면역세포 기능 역시 크게 약화한다. 작은 감염에도 속수무책으로 당한다는 것이다. 요로감염과 폐렴, 심부전 등에 걸려 결국 패혈증으로 사망에 이르는 수순이다.

박중현 교수는 "70세 이상 노인에게 낙상 후 변화는 한두 달 안에 급속히 진행된다”며 "특히 엉덩이뼈나 고관절이 부러지면 누워 뒤척일 수조차 없어 대부분 사망으로 이어진다”고 말했다. 대한노인재활의학회 자료에 따르면 고관절 골절을 당한 65세 이상 노인 3명 중 1명은 1년 내에 사망했다. 80세 이상은 절반이 두 달 내 사망했다.
 

   
   
 


여성은 뼈 약해 낙상 빈도 높고 사망률은 남성이 높아

특히 여성 노인은 낙상을 더욱 주의해야 한다. 대한노인재활의학회 조사 결과 여성이 남성에 비해 낙상 빈도와 골절 빈도가 모두 두 배가량 높았다. 고대안산병원 재활의학과 김동휘 교수는 “똑같은 낙상이라도 남성 노인은 멀쩡한데 여성 노인만 뼈가 ‘똑’ 부러지는 사례가 많다”며 “이는 골밀도를 유지시키는 여성호르몬이 50대부터 급격히 저하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또 여성에게 많이 생기는 관절염과 빈혈·기립성 저혈압으로 인한 어지럼증도 여성 노인의 낙상을 증가시키는 이유다.

반면 낙상에 의한 사망은 남성이 더 많다. 김동휘 교수는 “낙상으로 인한 골절 후 사망률은 남성이 여성보다 두 배가량 높았다. 남성 노인에게서 심장병·고지혈증 등의 심혈관계 질환이 더 많은 것이 원인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낙상으로 누워 있을 때 심혈관계 질환이 있던 환자는 혈관이 더 빨리 노화하고 패혈증도 더 빨리 진행된다.

강 이사장은 낙상은 예방할 수 있다는 것을 강조했다. 그는 “운이 나빠 넘어진 게 아니라 예방하지 않아 넘어진 것으로 봐야 한다. 최근 병원들이 낙상 예방 프로그램을 도입한 이후 낙상 발생률이 크게 줄었다”고 말했다. 대한노인회 이심 회장도 "노인 낙상은 자신 뿐 아니라 배우자와 자녀들에게도 큰 걱정과 부담을 안겨준다. 낙상 위험 요인을 잘 알고 예방하려는 의지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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