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르몬 분비 조절하는 콩알만 한 뇌하수체 혹 생기면 건강 위협

김선영 기자 2019.10.07 10:00

뇌하수체 종양 바로 알기

미혼 여성인 김모(32)씨는 2년 전 임신을 하지 않았는데 유즙(젖)이 나왔다. 생리가 불규칙해지다가 아예 멈춰버렸다. 부인과 질환을 의심해 산부인과를 찾았지만 별다른 이상이 발견되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호르몬 검사를 한 결과, 유즙 분비 호르몬인 프로락틴이 과다하게 분비된다는 사실을 알았다. 원인은 뇌하수체 종양의 하나인 ‘프로락틴 종양’이었다.

 뇌하수체는 코 뒤쪽, 뇌 정중앙 아랫부분에 위치한 조직이다. 무게 약 0.5g, 직경 1㎝ 정도로 콩알만 하지만 주요 내분비계 기능에 관여한다. 뇌하수체 위에 있는 시상하부의 명령에 따라 호르몬 분비를 조절한다. 여기에 종양이 발견되는 사례가 의외로 많다. 미국에서 발표된 역학조사 결과에 따르면 동양인의 경우 부검 시 약 12%, 영상 검사 시 약 20%에서 발견됐다. 가천대 길병원 내분비대사내과 이기영 교수는 “종양이 대부분 양성인 데다 건강에 영향을 주지 않는 ‘비기능성’이 많아 간과됐을 뿐 알고 보면 의외로 흔한 병”이라고 했다. 뇌하수체 종양은 전체 뇌종양의 10~15%를 차지한다.
전체 뇌종양의 10~15% 차지

뇌하수체는 크게 전엽과 후엽으로 구분하는 데 주로 문제가 되는 건 전엽이다. 전엽에선 성선 자극 호르몬(황체형성·난포자극 호르몬), 유즙 분비 호르몬, 성장호르몬, 갑상샘 자극 호르몬, 부신피질 자극 호르몬을 분비한다. 이런 뇌하수체 호르몬을 분비하는 세포들이 종양으로 변하면 호르몬이 과도하게 분비돼 건강 유지에 제동을 건다. 프로락틴 종양이 가장 흔하다. 이때 여성은 월경 장애나 유즙 분비, 불임이 초래될 수 있고 남성은 발기부전이나 성욕 감퇴 등을 겪는다.
 
 성장호르몬 분비를 자극하는 종양은 사춘기 전에 발병하면 키가 비정상적으로 크는 거인증, 사춘기 이후에 발병하면 말단비대증을 초래한다. 말단비대증은 서서히 진행해 스스로 잘 알아채지 못한다. 손발이 커져서 전에 끼던 반지가 안 들어가고 신발이 작아져 못 신게 될 때 의심할 수 있다. 부신피질 자극 호르몬은 혈액을 타고 이동해 호르몬 기관인 부신에 이르러 코르티솔(스트레스 호르몬) 생성을 촉진한다. 종양 탓에 과다하게 나오면 코르티솔이 과잉 분비돼 얼굴이 붓고 배가 나오는 대신 팔다리는 가늘어지는 쿠싱병이 나타난다. 이 교수는 “쿠싱병은 피부가 얇아지고 혈관이 확장돼 핏줄이 잘 보이며 약한 충격에도 멍이 잘 드는 특징이 있다”고 설명했다.
 
 
종양 커져 시신경 누르면 시야 결손 발생
 
가천대 길병원 내분비대사내과 이기영 교수

가천대 길병원 내분비대사내과 이기영 교수


반대로 종양이 정상 뇌하수체 조직과 혈관을 압박해 호르몬 결핍을 유도해도 문제다. 성선 자극 호르몬 분비가 결핍되면 여성은 무월경, 남성은 발기부전이 올 수 있다. 출산 직후 모유가 나오지 않거나 평소보다 면역 기능이 떨어지는 건 유즙 분비 호르몬이 부족해서다. 성장호르몬 분비가 감소하면 근육 발달이 잘 안 된다. 이 교수는 “성장호르몬은 성장기엔 키, 이후엔 근육 성장에 관여한다”며 “성인이 돼서 성장호르몬 결핍이 오면 힘이 빠지고 심할 경우 심장 근육이 약해져 심부전이 올 가능성이 있다”고 경고했다.
 
 갑상샘 자극 호르몬이 부족하면 추위를 심하게 타고 피로감을 느끼며 빈혈이 오기 쉽다. 부신피질 자극 호르몬 결핍이 심할 땐 생명이 위태로울 수 있다. 코르티솔 분비가 안 돼 스트레스에 적절한 반응을 할 수 없어서다. 무력감부터 저혈압 쇼크까지 다양한 증상이 나타난다. 호르몬 기능엔 영향이 없지만 종양의 크기가 커도 질환을 유발한다. 시신경이 눌리면 시야가 좁아지고 뇌척수액이 지나는 길을 막으면 뇌 안에 물이 차는 수두증이 나타난다.
 
뇌하수체는 호르몬의 중추 기관이다. 대부분 이를 잘 모른다. 종양이 생겨 신체 곳곳에 이상 증세가 나타나도 선뜻 뇌하수체를 떠올리지 못한다. 조기 진단이 어려워 병을 키우기 쉽다. 종양의 특징과 치료법을 이 교수의 도움말로 알아봤다.
 
-질환을 모르는 사람이 대다수다.
 “뇌하수체 종양은 우연히 발견되는 사례가 많아 ‘우연종’이란 표현을 쓰기도 한다. 두통이 생겨서 영상 검사를 했는데 발견되는 식이다. 증상의 특이성이 떨어지거나 서서히 진행돼 알아채지 못하곤 한다. 뇌하수체 종양은 호르몬 검사나 복합 뇌하수체 자극 검사, 영상 검사 등을 활용해 진단할 수 있으니 의심되면 병원을 찾는 게 좋다.”
 
 -어떨 때 검사를 받는 게 좋은가.
 “말단비대증이나 유즙 과다 분비 같은 눈에 띄는 증상이 있을 때는 반드시 정밀 호르몬 검사를 받아야 한다. 증상이 생겨 검사했는데도 원인을 찾지 못할 때, 호르몬 균형은 맞지만 시야 결손이나 두통이 생긴 사람 역시 검사를 받아볼 필요가 있다.”
 
 -뇌하수체 종양으로 헷갈리는 경우도 있나.
 “호르몬 기능의 이상을 유발하는 원인은 다양하다. 특히 복용 약의 영향일 수 있어 주의해야 한다. 예를 들어 일부 도파민 억제제 역할을 하는 소화제·위장약은 프로락틴 상승을 유발할 수 있다. 오래 먹으면 유즙이 나오거나 생리가 끊어질 수 있다. 또 코르티솔이 함유된 스테로이드 약을 장기 복용했을 땐 쿠싱병이 나타날 수 있다.”
 
 -치료는 어떻게 하나.
 “크게 수술과 약물이 있다. 수술로 종양을 떼어내고 약물로 부족한 호르몬을 보충한다. 기본적으로 프로락틴 종양은 약에 반응을 잘해 약물치료를 주로 하고 나머지는 수술을 우선시한다. 호르몬 기능에 이상이 없으나 종양의 크기가 1㎝ 이상이어서 증상을 유발할 때도 수술한다. 요즘엔 대부분 콧구멍으로 내시경을 넣어 수술하기 때문에 상처나 후유증 발생이 적다. 약물치료는 환자의 연령과 성별에 맞는 호르몬 수치를 파악하고 적절한 양을 투여하는 게 중요하다.”
  
뇌하수체 종양은 삶의 질과 직접적인 관련이 있다. 유방·난소·갑상샘·뼈·근육·부신 등 신체 부위에 두루 영향을 끼쳐 호르몬 균형을 흐트러뜨린다. 이 교수는 “제때 치료하지 않으면 심각한 합병증이 따를 수 있으니 뇌하수체 호르몬에 관심을 갖고 증상을 면밀히 살피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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