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날 대장암 협진팀은 황씨와 대면하기에 앞서 황씨의 케이스를 주제로 10분가량 다양한 의견을 주고받았다. 의료진은 “환자가 흡연을 하느냐” “재발이 의심되는 부위의 과거 영상 자료를 다시 한번 보자” “MRI(자기공명영상촬영)를 해보는 건 도움이 되느냐” 등 다각적 논의를 이어갔다. 이인규 교수는 “황씨의 경우 수술 전 워낙 진행된 상태였고 재발 가능성이 높았다”며 “하지만 단순한 결과 하나만으로 재발 여부를 단정짓기에는 모호한 케이스였다”고 말했다. 회의에서 여러 과 의료진의 관점에서 논의한 끝에 황씨에게 적합한 추적 관찰 방법과 향후 치료 방향 등이 나올 수 있었다.
의료진·환자 의사소통으로 신뢰 쌓아
서울성모병원 암병원이 중증 암 환자의 치료 결과를 끌어올리는 배경은 첫째로 황씨의 사례와 같은 다학제 대면 진료다. 암 환자의 진단·치료에 관련된 여러 임상과 전문의가 다양한 의견을 모아 환자에게 이상적인 치료 계획을 수립한다. 환자의 중증도가 높을수록 환자의 다양한 장기 상태를 여러 과 의료진이 종합적으로 분석하고 치료 계획을 수렴하는 것이 중요하다. 과별로 자유로운 의견을 교류하고 유대관계를 유지하는 병원 문화가 자리 잡혀 있다.
둘째는 연구 인프라다. 국내에서 처음으로 국제 인증을 받은 아시아 대표 차세대염기서열(NGS)센터를 기반으로 다양한 면역항암제·세포치료제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기존에 입증된 암 치료 표준 진료 프로토콜을 넘어 정밀의료를 근간으로 한 맞춤 치료에 집중한다. NGS는 종양조직·혈액을 분석해 수십 개에서 수백 개의 유전자를 확인해 암을 유발하는 유전자를 찾는 기술이다. 영상 촬영에서 보이지는 않지만 종양 수치가 올라갔을 때 암세포에서 떨어져 나온 미세한 DNA를 혈액에서 검출하는 기술 등 응용 분야가 무궁무진하다. 서울성모병원 비뇨기과 이지열(암병원 연구부장) 교수는 “치료 계획을 도출하기 어려운 중간 단계의 암은 매번 조직 검사를 하기 부담스럽고 암 환자는 치료 중 유전자가 변한다”며 “이럴 때 매번 조직 검사를 하는 대신 피·소변 같은 체액으로 유전자를 검사하는 기술을 집중적으로 연구하고 있고 여러 키트가 나오고 있다”고 말했다.
피·소변 활용한 유전자 검사 기술 연구
암병원 세포치료센터는 중증 난치성 암 환자를 대상으로 한 새 치료법을 선도하고 있다. 대표적인 게 림프종이다. 림프종 중에서도 예후가 좋지 않고 재발이 잘 되는 이비바이러스(EB virus)에 의한 림프종 환자에서 면역 세포인 T세포를 분리해 암세포에 대항할 수 있도록 실험실에서 만든 다음 다시 환자에게 이를 다량으로 이식하는 방식이다. 임상에서 재발률이 0%일 정도로 성과가 좋다. 또 골수이식 환자에서 발생하는 일종의 거부반응(이식편대숙주병)에 대항하는 줄기세포를 키워 환자에게 이식해 거부반응을 줄이는 시험도 하고 있다.
암병원이 첨단 연구 분야에서 가시적인 성과를 낼 수 있는 배경에는 그간 축적한 다양한 데이터가 있다. 서울성모병원이 중심인 가톨릭 바이오뱅크 네트워크 시스템은 가톨릭 산하 8개 병원의 암 환자 조직이 모여 있는 인체유래물 은행이다. 이지열 교수는 “환자의 다양한 샘플은 유전자 맞춤 치료 등 정밀치료의 기본 도구”라며 “일례로 전립샘암센터는 12년 전부터 전립샘은행을 만들고 환자의 샘플을 모으는 시스템을 구축했다”고 말했다. 환자 샘플은 임상 정보, 영상 자료, 병리 데이터와 종합적으로 분석된 뒤 치료 현장에서 응용된다. 이지열 교수는 “이미 병리과에서는 컴퓨터가 학습을 기반으로 암 부위를 찾아내고 암의 악성도 점수를 매기고 있다”며 “디지털 패솔로지라고 하는데 기존 영상장비 촬영으로 명확히 진단이 안 돼 놓치던 진단 오차를 줄여준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