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세 A씨에게 건선이 나타난 건 20대 중반부터였다. 피부가 빨갛게 변하더니 하얀 비늘 같은 각질이 일었다. 증상이 심해질수록 그는 스스로를 세상과 분리시켰다. 하지만, 병만큼은 그를 쉽게 놓아주지 않았다. 중증 건선으로 발전한 후 2년 전부터는 먹는 약과 광선치료도 모두 듣지 않을 만큼 악화했다. 주치의는 그에게 생물학적 제제 치료를 권했다. 건선 치료의 ‘최후의 보루’란 생각에 A씨는 망설였다고 한다. 하지만, 주치의에 대한 믿음으로 치료를 시작했고 지금은 “하루라도 일찍 치료하지 않은 게 아쉽다”며 농담할 만큼 상태가 개선됐다.

건선은 자가면역질환의 일종으로 일반 피부 건조증과 구분해 치료해야 한다.
일반 건조증과 원인·치료법 전혀 달라
이유가 있다. 건선의 원인이 외부가 아닌 내부에 있기 때문이다. 건선은 신체 면역기능 이상에 의해 발생한다. 면역 세포 중 하나인 T세포가 과도하게 자극돼 피부 세포가 빠르게 증식하고 통증·염증 반응을 유발한다. 적절히 치료하지 않으면 갈수록 병변 부위가 넓어지며 중증 건선으로 악화한다.
건선 환자 중 BSA(건선의 면적이 전체 피부에서 차지하는 비율) 10% 이상 또는 ASI(건선 중증도 지수) 10 이상은 중증 건선으로 분류한다. 보건복지부는 2016년 1월 1일부터 중증 건선을 일반 건선과 구분해 별도의 질병코드를 부여하고 있다. 일반 건선과 비교해 신체적, 정신적 건강에 미치는 영향이 그만큼 크기 때문이다.

질병에 따른 자살 위험도. [자료 보건복지부]
심혈관계 질환·대사증후군 위험 커져
건선으로 인해 뼈가 굳거나 변형되기도 한다. 이런 건선성 관절염은 건선의 가장 흔한 합병증 중 하나다. 염증이 인대나 건막 등에 퍼져 통증이 발생하고 이내 뻣뻣해지거나 모양이 변형된다. 이로 인해 생계를 위협받는 건선 환자가 적지 않다. 미국 국립건선재단이 2003~2011년까지 총 5604명의 건선 환자를 대상으로 조사한 연구에 따르면, 10명중 1명(12%)는 직장이 없었고 이들의 92%는 건선이나 건선성 관절염 질환으로 인해 직장을 구할 수 없다고 답했다. 중증 건선인 경우 경증과 비교해 실직한 비율이 1.8배 더 높았다.
건선은 단순히 보습제만 바른다고 낫지 않는다. 증상 정도에 따라 스테로이드 연고 등을 사용한 국소치료와 자외선을 쬐는 광선치료, 먹는 약 등을 사용해야 효과를 볼 수 있다. 특히, 중증 건선 환자에게 효과적인 치료제는 생물학적 제제다. 건선을 유발하는 면역세포를 선택적으로 억제해 건선의 증상을 완화한다.
초기에는 생물학적 제제의 종류가 제한적이라 한 제제에 효과가 나타나지 않으면 더 이상 치료할 방법이 없었다. 환자들이 생물학적 제제 치료를 망설이던 이유다. 하지만, 최근 새로운 방식의 생물학적 제제가 속속 등장하면서 중증 건선 환자에게 새로운 희망을 선물하고 있다. 인터루킨 억제제가 대표적이다. 부작용 위험이 낮고 장기적으로 사용이 가능하다. 3개월에 한번씩만 투여하면 되는 치료제도 개발돼 일상생활의 불편도 크게 줄었다.
지난해 6월부터 중증 보통건선이 산정 특례 제도의 혜택을 받게 되면서 생물학제제에 대한 환자 비용 부담은 대폭 줄었다. 경제적 부담으로 생물학제제 치료를 미뤄왔던 환자들도 비로소 숨통을 틀 수 있게 된 셈이다. 김태균 교수는 “중증 건선 환자는 망설이지 말고 전문의를 찾아 본인에게 적합한 치료를 시작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박정렬 기자 park.jungryul@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