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상실이나 뇌전증 발작 같은 심각한 뇌기능 손상을 일으키는 자가면역 뇌염의 새로운 원인이 밝혀졌다.
자가면역 뇌염은 건강하던 사람이 갑자기 뇌기능을 소실하는 중증 뇌질환이다. 기억상실, 뇌전증 발작은 물론 이상행동, 의식저하 같은 증상이 수일에서 수주에 걸쳐 나타난다. 심하면 중환자실 치료가 필요하다.
세균이나 박테리아를 방어하는 면역세포가 제어를 잃고 뇌를 공격하면서 발생한다. 일본뇌염으로 대표되는 바이러스성 뇌염보다 더 많이 발생한다. 과거엔 대부분 원인 미상의 뇌질환으로 분류됐으나, 진단 기술이 발전하면서 확인 환자가 급증하고 있다.
원인 항체는 지금까지 20여 가지가 발견됐다. 그 중에서도 항LGI1, 항NMDA 수용체 항체에 의한 뇌염이 대표적이다. 항체가 아직 밝혀지지 않은 환자도 전체의 40%에 이른다.
근본적인 원인은 여전히 밝혀지지 않았다. 부분적으로 종양과 연관이 있다고 추정할 뿐이었다. 실제 항LGI1 뇌염의 5~10%, 항NMDA 수용체 뇌염의 약 40%에서 종양이 발견된다. 그러나 종양이 발견되지 않는 나머지 대부분의 자가면역 뇌염은 왜 발생하는지 알 수 없었다.
서울대병원 신경과 주건·이상건 교수팀은 뇌염 환자들을 대상으로 사람백혈구항원 유전자를 분석한 결과, 항LGI1 뇌염 환자 중 약 91%에서 동일한 유전자형이 확인됐다고 최근 밝혔다.
연구팀은 자가면역뇌염의 다수를 차지하는 항LGI1 및 항NMDA수용체 뇌염 환자의 ‘사람백혈구항원 유전자’를 분석했다. 그 결과 항LGI1 뇌염 환자 11명 중 10명의 환자가 모두 동일한 유전자형(HLA-DRB1)인 것으로 확인됐다. 이 유전자형은 일반 한국인의 12%가 보유하고 있다.
3차원 구조를 분석해보니 이 유전자는 뇌에 있는 취약한 단백질인 LGI1을 공격하는 것으로 관찰됐다.
사람백혈구항원인 HLA는 면역반응을 개시하는 역할을 하는 유전자다. 인체 외부 또는 내부에서 유래한 물질을 사람백혈구항원이 면역세포에 제시함으로써 면역반응 시작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유전자 지문’이라고도 불리는 HLA는 장기이식에서 제공자와 수용자의 사람백혈구항원을 맞추면 거부반응을 약화시킬 수 있다. 류머티즘, 강직성척추증, 중증근무력증, 제1형 당뇨병 등의 자가면역 질환과 관계가 있음이 알려졌다.
이순태 교수는 “항LGI1 뇌염은 최근 진단기술이 개발된 신종 뇌질환이다. 발병 원인을 찾기 위해 국제적으로 경쟁이 치열했지만, 국내 연구진이 가장 먼저 원인을 밝힌 것”이라며 “유전자형 검사를 통해 기존 항체 진단방법의 정확성을 높일 수 있고, 동반된 종양의 유무를 판단하는 데도 도움이 된다”고 연구 의의를 설명했다.
주건 교수는 “최근 서울대병원 연구팀이 자가면역뇌염에 리툭시맵과 토실리주맵이 효과적인 치료법이라는 결과를 제시한 바 있다”며 “해당 유전자형으로 유발되는 병의 기전을 제어하는 치료법을 개발하여, 난치성뇌염 환자들에게 희망을 줄 수 있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자가면역 뇌염은 진단과 치료가 쉽지 않다. 국내에서는 서울대병원에서 진단을 위한 원인 항체 검사가 가능하다. 치료로는 면역글로불린, 리툭시맵, 토실리주맵등 다양한 생물학적 제제를 사용한다. 치료 효과는 우수하지만 자가면역 뇌염에 보험급여 적용이 되지 않아 환자들의 부담이 크다.
한편, 이번 연구는 최근 신경학분야의 최고 권위지인 미국신경학회보(Annals of Neurology)에 게재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