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무팀에 근무하는 회사원 박상철(43·가명)씨. 연말이 되면서 업무량이 평소보다 부쩍 늘었다. 평일은 물론 주말조차 쉴 시간이 없다. 스트레스가 심해져 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하고 소화가 잘 안 되는 날이 늘었다. 보고서를 만들고 제출하기 위해 바쁘게 이곳저곳을 뛰어다니다보면 이따금 심한 두통도 온다. 얼마 전부터는 극심한 흉통으로 잠에서 깨기도 했다. 가장 큰 문제는 연말까지 이런 바쁜 생활이 예고돼 있다는 점이다.
강동경희대병원 심장혈관내과 김종진 교수는 “스트레스를 받으면 일반적으로 느끼는 증상이지만, 박씨의 경우 ‘허혈성 심장질환’일 가능성이 크다”며 “중년층 이상에서 허혈성 심장질환을 앓는 사람이 늘고 있다”고 전했다.
실제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2011년 75만5000명 수준이던 허혈성 심장질환 환자는 2015년 85만명 수준으로 13.9% 늘었다.
연령별로는 지난해 기준 50대 이상이 전체 환자의 90.9%를 차지했다. 60대가 29.3%로 가장 많았고, 70대(29.0%), 50대(21.2%), 80대 이상(11.4%) 순이었다.
허혈성 심장질환은 심장에 혈액을 공급하는 동맥(관상동맥)이 딱딱해져 피가 제대로 전달되지 않는 질환이다.
허혈성 심장질환이란 말보단 ‘협심증’ 또는 ‘심근경색’으로 더 널리 알려져 있다. 두 질환은 비슷하지만, 질병의 진행속도와 경중에 따라 분류된다.
협심증은 혈관이 점점 좁아져 혈류가 줄어드는 질환이다. 심근경색에 비해 만성적으로 나타난다는 특징이 있다. 일정 강도 이상의 운동이나 노동을 할 때 앞가슴에 흉통이 발생하지만, 휴식을 취하면 이내 통증이 없어진다.
급성 심근경색증은 혈관이 좁아지는 속도가 즉시에 가까울 정도로 빠르다. 보통 혈전(피떡)이 생겨 혈관을 막는다. 혈액 공급이 순간적으로 완전히 차단되기 때문에 매우 위급한 상황에 처할 수 있다. 안정을 취해도 극심한 가슴통증이 이어지고, 식은땀·구토·호흡곤란 같은 증상을 동반한다.
급성 심근경색의 경우 전체 허혈성 심장질환자의 10.2%에 불과하지만, 사망자로 치면 전체 허혈성 심장질환 사망자의 71.8%나 되는 것으로 보고돼 있다. 그래서 협심증은 꾸준히 약물 치료를 하면서 관리하는 반면, 심근경색은 응급수술이 필요한 경우가 많다.
다른 혈관으로 새로운 통로를 만들어주거나(관상동맥 우회술), 카테터·스텐트를 이용해 막히거나 좁아진 혈관을 넓히는(경피적 관상동맥 중재술) 방법이 현재로썬 가장 좋은 치료법이다.
쥐어짜는 듯한 흉통, 간과했다간 낭패
환자는 대부분 중·노년층이지만, 젊다고 가볍게 넘겨선 안 된다. 젊었을 때 제대로 예방하지 않으면 혈관과 동맥이 뻣뻣하게 변하는 ‘죽상경화증’이 나타나기 쉽고, 이로 인해 허혈성 심장질환 위험은 더욱 높아지기 때문이다.
이따금 나타나는 쥐어짜는 듯한 흉통은 심장혈관이 정상이 아니라는 경고의 메시지다. 심근경색 같은 위급한 상황을 맞이하지 않기 위해선 즉시 전문의를 찾는 게 좋다.
더 중요한 건 예방이다. 수많은 예방법이 비방처럼 떠돌지만, 가장 중요한 건 ‘기본’이다. 꾸준한 운동, 규칙적인 생활, 균형 잡힌 식습관, 금연 등 익히 알려진 예방법이 가장 효과적이라는 의미다. 저용량 아스피린(75~150㎎) 복용도 예방 효과가 있다. 저용량의 아스피린을 장기간 복용하면 심혈관질환의 위험을 30% 정도 낮추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김종진 교수는 “중년 이후의 허혈성 심장질환은 젊었을 때부터 지속적으로 진행된 혈관노화, 흡연, 과체중, 고혈압, 당뇨병, 고지혈증, 스트레스 때문”이라며 “이런 원인을 제거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협심증의 경우 휴식을 취하면 통증이 쉽게 사라지기 때문에 병이 진행되고 있다는 것을 간과하기 쉽다”며 “평소 가슴이 답답하거나 쥐어짜는 듯한 통증을 종종 느낀다면 전문가와 상담하는 게 좋다”고 말했다.
■ 나도 허혈성 심장질환 고위험군?
· 고혈압·당뇨병·고지혈증 등을 앓는 만성질환자
· 60대 이상 폐경 여성
· 50대 이상 흡연자
· 젊은 나이(남 45세, 여 55세 이전)에 허혈성 심장질환을 앓았던 가족이 있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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