옷장 앞에서 한 잔? 알코올 중독자 60% "몰래 술 마셨다"

박정렬 기자 2016.11.10 10:02

다사랑중앙병원 환자 200명 설문 "주변 시선 의식되면 중독 의심해야"

직장인 김모씨는 얼마 전 아내 이모씨와 병원을 찾았다. 최근 횡설수설하거나 멍할 때가 잦아 걱정되던 아내가 갑자기 기절해 쓰러져있는 모습을 발견하게 되면서다. 
 
하지만 자기공명영상촬영(MRI)까지 마쳤는데도 아내의 몸에는 이상이 없었다. 담당 의사는 간 수치가 무척 높게 나타났다며 아내의 음주 문제를 의심했다. 그는 아내가 술을 마시는 모습을 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계속된 의사와 남편의 추궁에 이씨는 아이들을 등교시킨 후 혼자서 술을 마시곤 했다고 토로했다.
 
전문가들은 이씨처럼 술병을 숨기거나 몰래 술을 마시는 일이 반복된다면 알코올중독일 가능성이 높다고 경고한다.
 
보건복지부 지정 알코올 질환 전문 다사랑중앙병원이 최근 입원 환자 217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를 보면 62%(135명)가 ‘술을 숨긴 적 있다’고 답했다. ‘술을 몰래 마신 적이 있다’는 환자는 10명 중 7명(77%, 168명)이 넘었다.
 
가족에게 들키지 않게 장롱, 책상, 싱크대 속에 숨기거나  공원, 계단, 주차장 등 집 밖에 술을 숨기기도 했다.
 
다사랑중앙병원 정신건강의학과 허성태 원장은 “혼자 또는 몰래 술을 마시며 특이한 장소에 술을 숨기는 행동은 알코올중독의 특징 중 하나”라며 “주변의 시선을 의식하거나 자신의 행동이 문제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술을 제어하지 못한다면 알코올 중독을 의심해봐야 한다”고 말했다.
 
그렇다고 술병을 숨기거나 버리는 것이 능사가 아니다. 이 경우, 알코올 중독자는 술을 손에 넣기 위해 또 다른 방법을 찾을 수 있고, 가족의 잔소리나 걱정이 늘수록 죄책감이나 자기에 대한 연민과 후회가 커져 다시 술을 마실 가능성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여성 알코올 중독 발견하기 더 어려워
 
자신의 음주 문제나 음주 행위의 심각성을 부정하는 일. 술을 마시는 이유에 대해 변명과 핑계를 대는 모습은 알코올 중독자에게 흔히 발견되는 증상이다. 문제는 몰래 술을 마시고 술병을 감추는 등 방어적인 행동을 보이기 때문에 주변에서 문제를 알아차렸을 때는 이미 심각한 상태에 이른 경우가 많다는 데 있다.
 
허성태 원장은 “특히 여성들은 사회적인 편견이나 주위 시선 때문에 문제를 감추려는 경우가 많은 데다 대부분 집에서 혼자 몰래 술을 마시기 때문에 함께 사는 가족들조차 문제를 알아채기 쉽지 않다”고 우려했다.
 
그는 “몰래 술을 마시는 상황이라면 이미 술에 대한 자제력을 상실해 가고 있다고 볼 수 있다”며 “사소하더라도 음주 문제가 엿보인다면 미루거나 방관하지 말고 가까운 알코올 상담센터나 전문병원을 찾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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