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통·떨림과 함께 3대 증상으로 꼽히는 어지럼증. 10명 중 3명은 일생 동안 적어도 한두 번은 겪을 정도로 흔하다. 많은 사람이 어지럼증을 겪지만 유난히 오해가 많은 증상이다. 섣부른 선입견이 치료를 어렵게 만든다. 치료를 받으면 대부분 잘 낫지만, 대수롭지 않게 여기거나 무턱대고 난치병이라 생각해 치료를 포기하는 경우가 적잖다. 끙끙 앓다가 원인질환을 키우기도 한다. 전문가들은 어지럼증의 양상과 원인이 다양한 만큼 완치를 위해서는 정확한 진단을 받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어지럼증이라고 하면 빈혈부터 떠올리는 사람이 있다. 어지럼증 때문에 약국을 찾으면 철분제를 권하곤 한다. 하지만 어지럼증이 빈혈 때문이라는 것은 옛말이다. 어지럼증 환자가 빈혈로 진단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영양과잉 시대인 요즘, 조금 어지럽다고 철분제를 먹었다가는 되레 철분 과다로 건강을 해 칠 수 있다.
철분제 먹었다간 되레 건강 해쳐
어지럼증은 크게 귀와 뇌의 문제로 생긴다. 일반적으로 귀에 이상이 생겨 발생한 어지럼증을 ‘말초성 어지럼증’이라고 한다. 사람은 신체 균형을 유지하기 위해 여러 감각의 정보를 활용하는데, 그중 핵심 기관이 전정기관이다. 귓속 깊숙한 곳에 달팽이관과 함께 붙어 있는 세반고리관과 이석기관이 여기에 해당한다. 이곳에 염증이 생기거나(전정신경염), 이석기관에 있는 수많은 이석 중 일부 부스러기가 떨어져 나와 반고리관 안에 들어가 돌아다니면서(이석증) 어지럼증을 유발한다. 감각의 균형이 깨지는 것이다.
반면에 뇌쪽의 이상으로 생기는 어지럼증은 ‘중추성 어지럼증’에 해당한다. 전정기관에서 보낸 신경정보가 소뇌로 전달돼 몸의 중심을 유지하게 되는데, 뇌에 문제가 생기면 중추신경이 신경정보를 해석하는 데 오류가 생겨 어지럼증이 생긴다. 가장 흔한 원인은 뇌졸중이다. 뇌 혈액순환에 이상이 생기면서 소뇌에 혈액 공급이 잘 되지 않아 어지럼증이 생긴다. 많지는 않지만 극심한 스트레스·불안 등 심리적 요인으로 발생하는 심인성 어지럼증도 있다.
고대안암병원 신경과 석흥열 교수는 “어지럼증은 말초성·중추성·심인성에 따라 원인 자체가 달라 이에 대해 정확히 감별해야 한다”며 “다만 모든 환자의 증상이 명확히 구분되지는 않기 때문에 전문의를 찾아 진찰을 받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어지럼증은 원인에 따라 증상의 양상이 다르다. 이는 원인질환을 가늠하는 데 하나의 단서가 된다. 보통 말초성 어지러움은 주위가 빙빙 도는 듯한 느낌, 중추성 어지러움은 아찔하거나 기절할 것 같은 느낌으로 표현되곤 한다.
양상·지속시간에 따라 원인 달라
지속시간도 중요하다. 만약 1분 이내로 발생하는 발작성 어지럼증의 경우 가장 흔한 것이 이석증이다. 빙빙 도는 어지럼증이 생겼다가 자세를 바꿔주면 증상이 나아지고 이명 증상도 동반된다. 또 몇 분간 지속되면 뇌졸중 가능성을 의심해 볼 수 있다. 뇌로 가는 혈액의 공급이 원활하지 않아 생긴다. 이중으로 보이는 복시, 발음 곤란, 사지 감각 이상이 동반될 수 있다.
이보다 더 오랫동안 지속돼 수십 분, 수 시간을 넘기면서 반복적으로 증상이 나타나면 ‘메니에르병’일 가능성이 크다. 메니에르병은 달팽이관과 전정기관 안에서 순환하는 내림프액이 과도하게 많아져 전정기관이 부풀어 오르면서 발생하는 질환이다. 만성 어지럼증으로 꼽히기 때문에 꾸준히 전문의 치료를 받는 것이 중요하다. 만약 어지럼증이 하루를 넘긴다면 전정신경염을 의심해 볼 수 있다.
분당서울대병원 신경과 김지수 교수는 “말초성 어지럼증은 아무리 어지러워도 걸을 수 있지만 중추성 어지럼증은 자세 불안으로 앉거나 서 있을 수 없는 경우가 많다”며 “제때 치료받을 수 있도록 증상을 잘 살펴야 한다”고 말했다.
재발·만성화 않도록 주의
어지럼증을 난치병으로 생각하기 쉽지만 비교적 치료가 잘 된다. 치료보다 원인질환을 정확히 가려내는 것이 관건이다.
이석증의 경우 머리 위치를 순차적으로 바꿔 반고리관 내 이석 부스러기를 원래 위치로 되돌리는 이석정복술로 치료한다. 반복적으로 시행하면 전체 환자의 90%는 바로 나아질 수 있다. 이석 부스러기가 반고리관이 아닌 다른 데 들러붙어 있는 경우에는 고개를 흔들거나 작은 진동기로 이석을 떼낸 후에 이석정복술을 받으면 된다.
염증이 생긴 전정신경염은 오히려 별다른 치료가 필요 없다. 그래서 감기에 비유되곤 한다. 시간이 지나면서 뇌 보상 기전에 의해 저절로 회복된다. 대신 증상이 심한 경우 진정제나 진토제(구토약) 등 약이 처방되기도 한다. 메니에르병도 우선 진정제·진토제로 치료하지만 만성화될 수 있어 주의해야 한다. 증상이 심하거나 자주 발생하면 청력소실 위험이 있기 때문에 꾸준히 치료·관리해야 한다.
강북삼성병원 이비인후과 김민범 교수는 “어지럼증을 무조건 난치병이라고 생각하는 건 큰 오해”라며 “하지만 재발하거나 만성화할 수 있기 때문에 증상이 생겼을 때 바로 전문적인 진단과 치료받는 것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런 어지럼증은 정상입니다
멀미
지극히 정상인데 느끼는 어지럼증을 생리적 어지럼증이라고 한다. 멀미는 균형유지에 필요한 감각정보가 비정상적으로 전달돼 유발되는 일시적 어지럼증이다. 부적절한 자극으로부터 몸을 보호하려는 일종의 경고 신호다. 자극이 없어지면 바로 회복된다. 지극히 흔하고 정상적인 반응이다.
체성감각성 어지럼증
푹신한 스펀지나 모래사장을 걸을 때처럼 다리를 통해 전달되는 감각이 교란돼 느끼는 어지럼증을 말한다. 교통사고로 목에 충격을 받았을 때도 이런 감각의 교란이 생겨 지속적으로 멀미와 비슷한 증상이 나타날 수 있다.
상륙증후군
장기간 배·비행기·자동차 여행 후 육지에서 중심이 잡히지 않고 흔들거리는 느낌이 드는 증상이다. 멀미와 마찬가지로 생리적 어지럼증의 하나다. 전정기관이 비정상적 자극에 적응했다가 정상적인 환경에서 재적응이 원활하게 되지 않아 발생한다.
Q&A로 알아보는 어지럼증
Q.어지러우면 이석증이다?
A.어지럼증의 원인질환 중 이석증이 사람들에게 알려지면서 어지러우면 이석증부터 의심하는 사람이 많다. 하지만 전체 어지럼증 중 이석증이 차지하는 비중은 20% 정도에 불과하다. 빙빙 도는 어지러움인지, 몸의 자세를 바꾸면 증상에 변화가 생기는지 체크할 필요가 있다. 무엇보다 어지럼증을 유발하는 원인이 워낙 다양해 병원에서 정확한 검사·진단을 받는 것이 좋다.
Q.체하면 어지럽다?
A.어지럼증과 메스껍고 토하는 증상이 같이 오곤 하는데, 이 때문에 소화가 안 돼 어지러움을 느낀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이는 인과관계를 혼동해 발생하는 오해다. 주위가 빙빙 돌면서 어지러운 경우 속이 메스껍고 구토를 하게 되는데, 이는 어지럼증을 유발하는 전정신경계와 소화기계통의 신경계가 밀접하게 연결돼 있기 때문이다. 체해서 어지러운 게 아니라 어지럼증의 동반 증상이 구토와 소화불량이다.
Q.어지럼증이 심할수록 위험하다?
A.어지럼증이 심해지면 큰 병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어지러운 정도는 원인질환의 중등도와 별 상관이 없다. 뇌의 문제로 인한 중추성 어지럼증이 말초성 어지럼증보다 심한 건 아니다. 오히려 어지럼증으로 인한 불편감을 말초성 어지럼증 환자가 더 호소하기도 한다.
Q.어느 과(科)로 가지?
A.어지러우면 어느 과에서 진료를 받아야 할지 난감해진다. 신경과와 이비인후과를 놓고 고심한다. 두 진료과 모두 어지럼증을 담당한다. 단, 중요한 것은 진료과의 선택이라기보다 의사의 선택이다. 어지럼증을 전문으로 보는 의사인지 확인하는 것이 우선이다. 종합병원으로 갈 경우 신경과와 이비인후과 간 협진이 잘 이뤄지고 있는지 여부도 치료 결과를 좌우하는 요소다.
도움말=분당서울대병원 신경과 김지수 교수, 고대안암병원 신경과 석흥열 교수, 강북삼성병원 이비인후과 김민범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