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증으로 종일 누워지낸다면 명상·운동만으론 회복 안 돼요

권선미 기자 2023.05.16 08:49

[닥터스 픽]〈64〉우울증 치료

아플 땐 누구나 막막합니다. 어느 병원, 어느 진료과를 찾아가야 하는지, 치료 기간은 얼마나 걸리는지, 어떤 치료법이 좋은지 등을 끊임없이 고민합니다. 아파서 병원에 갔을 뿐인데 이런저런 치료법을 소개하며 당장 치료가 필요하다는 말에 당황스러울 때도 있습니다. 주변 지인의 말을 들어도 결정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이럴 때 알아두면 쓸모 있는 의학 상식과 각 분야 전문 의료진의 진심 어린 조언을 소개합니다. <편집자주>

Q. 아침에 눈 뜨는 것이 우울하다고 생각되는 30대 여성입니다. 회사에 가야 하는데 어느 순간부터 아무 일도 하기 싫습니다. 저녁에는 피곤한데 잠이 잘 안옵니다. 회사 업무 역시 집중력이 떨어져 지적을 자주 받고, 무기력하게 누워있어 일상도 힘듭니다. 병원을 찾으니 우울증 치료를 권하는데, 이 정도로도 약을 먹어야 하는지 겁이 나고 무섭습니다. 명상·운동으로 마음을 좀 다잡으면 괜찮지 않을까요. 특히 약 먹으면 행동이 굼뜨고 멍해지지 않을까 걱정입니다.

건국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전홍준 교수의 조언

우울한 감정이 얼마나 오래 지속됐는지 알기 어렵지만, 현재 스스로 삶이 무가치하게 느껴진다면 우울증 치료가 필요해 보입니다. 물론 증상이 심각하지 않은 우울감은 스트레스를 줄이려는 노력, 운동, 여가 활동, 휴식, 종교 생활 등에 의해 자연히 없어지기도 합니다. 하지만 흔히 우울증이라고 부르는 주요우울장애는 최소 2주 이상 거의 매일 우울 증상이 지속되고 부정적 생각으로 제때 잠을 자고 밥을 먹고 활동하는 주요 일상 생활이 심각하게 저해된 상태입니다. 시간이 지나면 좀 괜찮아지겠지란 생각에 우울증 치료를 미루면 증상이 통상적으로 6개월 이상 지속됩니다. 정신의학 분야에서는 하루이틀 기분이 저조하다고 우울증으로 진단하지 않습니다. 결국 일상적 삶에서 행복감을 느끼지 못하는 우울증이 극단적 선택으로 이어질 수 있어 우려스럽습니다. 

우울증은 우울한 기분, 의욕·흥미 저하, 무가치감, 집중력 장애, 식욕·수면 변화, 자살 사고 등을 불러 일으킵니다. 사실 우울증은 주변에서 매우 흔하게 볼 수 있는 질병입니다. 10명 중 3명가량은 우울 증상을 경험한다는 보고도 있습니다. 세계보건기구(WHO)에서도 우울증은 심각한 장애 및 사망의 원인 질환 중 하나라고 강조했습니다. 고혈압·당뇨병처럼 우울증을 앓는 사람이 매우 많고 그 심각성이 다른 신체 질환에 못지 않다는 의미입니다. 


그저 마음이 약할 뿐이라며 우울증을 치료하지 않고 지내면 점차 학업·업무 성취도가 떨어지면서 사회생활이 힘들어지고 대인관계, 가족관계 등에 문제가 발생할 가능성이 높아집니다. 만성질환을 앓고 있다면 건강 상태가 더 악화한다는 연구결과도 있습니다. 

우울증은 누구나 평생 한번은 앓고, 누구에게나 찾아올 수 있습니다. 윈스턴 처칠, 에이브라함 링컨 같은 위인도 우울증을 앓았습니다. 문제는 이후 대처입니다. 절망의 늪에서 다시 일어나야 합니다. 왜 나에게 우울증이 생겼는지 자책하고 무기력하게 시간을 보내기보다 나 자신을 위해서라도 우울증 치료를 받길 권합니다. 적극적인 치료로 우울증 증상 악화나 재발, 동반 질환 발생 등을 억제할 수 있습니다. 

우울증 치료는 크게 약물 치료와 비약물치료로 나눠집니다. 비약물 치료는 우울증 환자가 보이는 부정적 생각을 교정하는 방식의 인지행동 치료로 이뤄집니다. 약물 치료만큼이나 효과가 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다만 현실에서는 비용·시간, 숙련된 치료자 부족 등과 같은 문제로 약물치료를 우선적으로 고려됩니다. 

안타깝게도 우리나라에서는 질문주신 분처럼 우울증으로 약물치료를 받는 것을 숨기고 싶어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혈압이 높으면 혈압약을 먹는 것이 당연한 것처럼 우울증일 땐 우울증 약을 먹으면서 치료해야 합니다. 우울증 약은 마라톤 등 달리기 시합을 할 때 가장 앞에서 안정적으로 속도를 조절하도록 돕는 페이스메이커처럼 뇌에서 세로토닌이라는 신경전달물질의 활성을 높여 우울 증상을 호전하는 기전으로 감정을 조절해 평온한 일상을 유지하도록 돕는 역할을 합니다. 실제 우울증과 극단적 선택의 생물학적 원인 연구에서 세로토닌의 변화가 공동적으로 관찰됩니다. 이는 약물치료로 뇌 속 생물학적 변화를 정상화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뒷받침합니다. 

이런 이유로 정신건강의학과에서는 우울증으로 진단되면 우울증 약을 처방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데 약물치료를 권하면 질문을 주신 분처럼 머리가 멍해지고 행동이 굼떠져 바보가 되는 것 아니냐고 걱정합니다. 기억해야 할 점은 우울증 역시 몸이 처지고 잠을 못 이루고 머리가 멍해지는 증상을 호소합니다. 우울증 약 복용으로 이런 증상이 생긴 것인지부터 면밀하게 살펴야 합니다. 

머리가 멍하다고 느껴지는 우울증 약의 진정·이완 효과는 우울 증상으로 지친 뇌를 회복하기 위해 필요합니다. 또 이런 증상은 일시적일 뿐 지속하지 않습니다. 우울증을 치료하지 않으면 오히려 증상 악화로 몸이 처지고 멍한 상태로 지낼 수 있습니다. 특정 증상으로 너무 힘들다면 상담을 통해 다른 약으로 바꾸면 됩니다. 최근엔 우울증 치료에 쓰이는 약들은 20~30년 전에 개발된 약과 달리 부작용이 현저히 줄어 비교적 안전하게 복용할 수 있습니다.

우울증 약물치료에서 중요한 점은 처방된 그대로 약을 잘 복용해야 한다는 점입니다. 요즘엔 더 효과적으로 우울증을 치료하기 위해 한 가지 이상의 약을 처방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각 약마다 몸에 작용하는 방식이 조금씩 다릅니다. 어떤 약은 하루 한 번만 먹어도 되지만, 어떤 약은 두 세번에 나눠 먹어야 합니다. 간혹 오전에 먹는 것이 약효가 더 좋거나 잠자기 전에 복용하도록 권고하는 약도 있습니다. 복잡할 수 있지만 담당 전문의에게 언제, 어떻게 약을 먹는지 충분히 설명을 듣고 그에 맞춰 잘 복용하길 권합니다. 약 복용에 소홀하면 약효 부족으로 우울증이 더디게 나을 수 있습니다. 

특히 겉으로 보기에 증상이 좋아졌다고 임의로 약 복용을 갑자기 중단하는 것은 위험합니다. 혈중 약물 농도가 급격히 떨어지면서 금단 증상을 겪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울증 약물치료를 중단할 때도 조금씩 약 복용량을 줄입니다. 게다가 지속적으로 우울증 약 복용을 중단하면 우울증이 재발 위험이 없는 완전 관해(Remission) 상태에 도달하기 어렵습니다. 다행히 관해에 이르더라도 재발 가능성이 높습니다. 우울증 약물치료의 효과를 확인하려면 최소 2주 이상의 기간이 필요합니다. 적절한 치료 반응을 보이면 초기 급성기 치료 후 6~12개월 동안 약물 치료를 유지합니다. 

이 외에도 우울증 약을 먹을 땐 술을 얼마나 많이 자주 마시는지, 어떤 건강보조식품을 먹는지, 다른 질환 치료를 위해 먹는 약은 무엇인지 등을 알려야 합니다. 우울증 약 복용과 관련없는 것처럼 느껴지지만, 알코올은 신경계에 작용해 우울증 약의 치료 효과에 영향을 끼칩니다. 또 건강보조식품이나 다른 약도 우울증 약과의 상호작용으로 약물 농도에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우울증은 내 마음이 약해서 생기는 병이 아닙니다. 또 시간이 지난다고 낫지 않습니다. 이유없이 무기력하고 부정적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문다면 가볍게 정신건강의학 병의원을 찾아 상담·치료받길 바랍니다. 

정리= 권선미 기자 kwon.sunmi@joongang.co.kr

※ 진료받을 때 묻지 못했던 궁금한 점이 있으면 메일(kwon.sunmi@joongang.co.kr)로 보내주세요. 주제로 채택해 '닥터스 픽'에서 다루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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