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 이야기]콜레스테롤 약을 꾸준히 먹었을 뿐인데 심장이 약해졌다고?

권선미 기자 2018.02.23 17:21

#20 몸 속 영양소를 빼앗는 약의 이중성

일러스트 최승희 choi.seunghee@joongang.co.kr

약은 병을 효과적으로 치료하는데 필수적인 요소입니다. 하지만 예상하지 못했던 약 부작용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양날의 칼인 셈입니다. 최근 약을 장기간 복용하면 내 몸 속의 영양소가 고갈된다는 새로운 개념이 주목받고 있습니다. 바로 ‘드럭머거(Drug Mugger·약 강도)’입니다. 의약품이 마치 강도처럼 몸속에 저장해 놓은 유익한 영양소를 강탈한다는 의미입니다. 스무 번째 약 이야기에서는 약이 유발하는 영양소 결핍에 대해 알아봤습니다.
 

드럭머거는 우리 몸이 약의 유효성분을 분해·흡수·배출하는 과정에서 나타납니다. 약의 영양소 사용량이 몸속에 저장·축적한 것보다 많거나, 약의 유효성분이 영양소의 체내 흡수·합성을 방해해서 생깁니다. 만일 고혈압·당뇨병·고지혈증 같은 만성질환으로 약을 복용하고 있다면 영양소 결핍으로 나도 모르게 몸이 축날 수 있습니다.
약이 빼앗는 영양소는 비타민B12를 비롯해 엽산·비타민B1·코엔자임Q10· 멜라토닌 등 다양합니다. 다만 복용하는 약에 따라 부족해지기 쉬운 영양소가 각각 다릅니다. 따라서 드럭머거에 효과적으로 대응하려면 어떤 약이 어떤 영양소를 빼앗는지를 알고 있어야 합니다.
 

드럭머거를 유발하는 대표적인 약은 메트포르민 계열의 당뇨병 치료제입니다. 메트포르민은 포도당의 생산·흡수를 차단해 혈당을 낮춥니다. 메트포르민은 장 내부 표면에 달라붙어 포도당뿐 아니라 비타민B12·의 체내 흡수도 방해합니다. 메트포르민을 장기 복용한 환자의 일부에서 체내 비타민B12의 농도가 정상수치 이하로 떨어졌다는 다수의 연구결과가 발표됐습니다. 비타민B12는 신경을 둘러싼 막을 구성하는 물질을 만듭니다. 이 영양소가 부족해지면 감각신경 손상으로 손발이 따끔거리고 팔다리 무력감을 호소합니다.
고지혈증 환자가 주로 복용하는 스타틴 계열의 고지혈증 약은 코엔자임 Q10 부족을 조심해야 합니다. 스타틴은 간에서 콜레스테롤이 합성되지 않도록 하는 약입니다. 문제는 코엔자임 Q10이 콜레스테롤과 같은 경로로 체내에서 합성된다는 점입니다. 따라서 스타틴을 복용하면 콜레스테롤과 함께 코엔자임Q10의 체내 합성도 억제됩니다. 고지혈증 약을 꾸준히 먹는 것만으로 코엔자임 Q10이 부족해질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미국 컬럼비아대학 신경과 룬덱 교수 연구팀은 고 콜레스테롤혈증으로 대표적인 스타틴 계열의 고지혈증 약인 아토르바스타틴(상품명 리피토)을 매일 80㎎씩 복용하고 있는 환자 34명을 대상으로 30일 동안 코엔자임 Q10의 혈중 농도를 관찰했습니다. 그 결과 코엔자임 Q10의 체내 농도가 아토르바스타틴 복용 전 1.26 ㎍/mL에서 30일 후 0.62 ㎍/mL로 49% 줄었습니다(미국 신경학학술지, Archives of Neurology·2004). 미국 예일대 연구팀은 스타틴 계열의 약을 장기 복용한 사람의 체내 코인자임 Q10의 양이 16~54% 감소됐다고 밝혔습니다.
코엔자임 Q10은 자동차 엔진에 시동을 걸 때 불을 켜는 점화 플러그 같은 역할을 합니다. 인체 모든 세포에서 발견돼 ‘유비퀴논(ubiquinone·도처에 있다는 의미)’이라고도 불립니다. 코엔자임 Q10이 부족해지면 신체 에너지를 가장 많이 소모하는 심장에 영향을 줍니다. 심장의 근력이 떨어져 혈액을 뿜어내는 힘이 약해지고, 혈액공급이 원활하게 이뤄지지 않습니다. 심장의 기능 약해집니다.
 

고혈압·심부전 치료를 위해 복용하는 약인 이뇨제도 주의해야 합니다. 이뇨제는 콩팥에서 나트륨 재흡수를 막거나 소변의 배설을 유도해 부종을 제거하거나 혈압을 낮춥니다. 이 과정에서 수용성 영양소인 비타민B1도 빠져나갑니다. 포도당을 에너지로 전환하지 못해 팔다리가 저리고, 다리 근력이 약해지는 증상이 나타납니다. 캐나다 오타와병원 연구팀은 이뇨제를 장기 복용한 환자의 98%에서 비타민B1이 결핍돼 있다는 점을 확인했습니다.
부족한 영양소를 채웠더니 본래 기저질환의 치료효과가 높아졌다는 연구결과도 있습니다. 스위스 베른대학병원 연구팀은 이뇨제를 복용하고 있는 좌심실 박출률(LVEF·심장에서 들어온 혈액을 대동맥을 통해 전신으로 내보내는 펌프 능력)이 40%이하인 만성 심부전 환자를 대상으로 비타민B1의 보충 효과를 분석했습니다.
연구팀은 환자를 두 그룹으로 나눠 한 그룹은 기존 치료에 비타민B1을 28일 동안 매일 300㎎씩 추가 복용토록 했고, 다른 한 그룹은 가짜 약을 복용토록 했습니다. 그 결과, LVEF이 비타민B1을 보충한 그룹은 LVEF가 기존 29.5%에서 32.8%로 높아졌습니다. 반면 같은 기간 위약군은 LVEF가 29.5%에서 28.8%로 떨어졌습니다. 연구팀은 이뇨제로 부족해지기 쉬운 영양소를 보충하는 것만으로도 만성 심부전환자의 심장기능을 유지하는데 긍정적인 효과를 줄 수 있다고 판단했습니다(심장임상연구, Clinical Research Cardiology·2011).
입으로 섭취하는 모든 영양소의 체내 흡수를 방해하는 약도 있습니다. 바로 위산 생산·분비를 억제하는 PPI계열(프론톤펌프억제제) 위염·위궤양·역류성식도염 치료제입니다. 대부분의 영양소는 음식을 통해 섭취합니다. 그런데 위산 분비를 억제하는 약을 장기 복용하면 음식을 분해하는 위산의 생산이 줄면서 영양소 흡수율이 떨어집니다. 위산의 생산·분비를 억제하는 약을 1년 이상 복용하면 영양소 결핍이 나타날 가능성이 있습니다.
 

유의해야 할 점은 또 있습니다. 지속적인 영양소 결핍은 당뇨병·고혈압 같은 만성질환 관리를 까다롭게 합니다. 몸속 영양소가 부족하면 약을 완전히 흡수하지 못해 생기는 찌꺼기인 호모시스테인 농도가 높아집니다. 호모시스테인은 메티오닌이라는 아미노산이 분해되면서 생기는 일종의 독성 아미노산입니다. 약을 장기 복용하는 만성질환자는 호모시스테인 농도가 15~20% 높아집니다. 약을 먹어도 약효가 충분히 나타나지 않아 병이 악화될 수 있습니다. 약으로 영양소가 부족해지고, 약효가 떨어져 병이 심해지는 악순환이 반복합니다.
약은 병을 효과적으로 치료·관리하는 좋은 도구입니다. 하지만 몸이 축나지 않으면서 약효를 제대로 얻으려면 약으로 부족해지기 쉬운 영양소를 채우는 것이 좋습니다. 다행히 부족한 영양소를 보충하면 몸이 빠르게 회복됩니다.
 
도움말: 오성곤 성균관대 약대 겸임교수
 
※ 약에 대해 궁금한 점이 있으면 메일로 보내주세요. 주제로 채택해 '약 이야기'에서 다루겠습니다. (jh@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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