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궁·질이 골반 밖으로? 노년기 여성의 말 못할 질환

김진구 기자 2016.08.23 13:25

'골반장기탈출증' 50대 절반서 겪어...근육 약해진 탓

#. 김순복 할머니(85·가명)는 얼마 전 목욕을 하다가 회음부 쪽에 주먹만 한 살덩어리가 만져졌다. 몇 년 전부터 종종 밑이 빠질 것 같은 기분이 들었지만, 자식들에게 말하기엔 낯 뜨겁고 산부인과에 가는 건 익숙하지 않아 그냥 참고 지내던 게 화근이 됐다. 급한 마음에 서울에 있는 딸에게 연락을 했고, 결국 딸과 함께 병원을 찾았다. 병원에선 ‘자궁탈출증’이라고 진단했다.

   
 

골반장기탈출증이란 자궁이나 질, 항문 등 골반 주변의 장기가 밖으로 빠져나오는 증상이다. 정도에 차이가 있지만 우리나라 50세 이상 여성의 절반 이상이 갖고 있을 정도로 흔한 증상이다.

그러나 유병률에 비해 흔히 알려진 질환은 아니다. 골반 장기의 탈출 정도가 일상생활에 큰 지장을 주지 않을 정도로 경미한 사례가 많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환자 대부분이 가족에게조차 알리기 꺼릴 정도로 수치스럽게 느끼기 때문이다.

서울시 보라매병원에서 10년째 골반장기탈출증 클리닉을 운영하고 있는 산부인과 이택상 교수는 “나이를 먹으면 골반을 지지하는 근육이 탄력을 잃고 골반 장기가 밖으로 빠져나오는 증상을 겪는다”며 “장기적이고 격렬한 복압(배에 가해지는 압력) 상승이 골반장기탈출증을 악화시킨다”고 설명했다.

그는 “특히 70대 이상 여성 노인은 과거 다산을 하던 세대로, 과거 조산사의 도움으로 집에서 출산하는 사례가 많아 분만 후 회음부 관리가 제대로 되지 못했다”며 “경제적으로 어려운 시절을 거치면서 육체노동을 많이 하고, 이로 인해 복압이 심해질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만성 폐질환 동반 시 발병빈도 높아져

그에 따르면 비만, 천식, 만성 기관지염, 기관지 확장증 등 장기적으로 복압을 상승시키는 요인들이 골반 장기의 탈출을 촉진한다.

골반 장기가 탈출하는 형태와 정도는 환자마다 다르다. 환자는 주로 ‘자궁이 빠지는 것 같다’ ‘소변이 자주 마렵다’ ‘소변을 시원하게 보기 어렵다’는 증상을 호소한다.

특히 이런 증상이 기침을 하거나 무거운 것을 들 때 심해진다면 골반탈출증후군이 유력하다는 게 이 교수의 설명이다.

방치하면 일상생활에 큰 불편을 겪고, 특히 방광류는 배뇨장애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종종 보행장애로 이어지는 경우도 있다.

   
 

간단한 시술로 교정 가능

이 교수는 “많은 노인이 질환에 대해 잘 모르거나 수치스럽다는 이유로 쉬쉬하다가 병을 키워오는 경우가 많다”며 “진단과 치료가 비교적 쉬운 질환이라 더욱 안타깝다”고 말했다.

증상이 경미하다면 수술이 아닌 대증요법으로 교정할 수 있다. 회음부 근육과 항문거근을 탄력 있게 하는 케겔 운동을 틈틈이 하면서 탈출을 악화하는 기침·비만·만성변비를 치료하면 된다.

정도가 심하더라도 반드시 수술을 받을 필요는 없다. ‘페서리(Pessary)’라 불리는 캡을 사용해 질과 자궁의 탈출을 막을 수 있다. 다만, 환자에 따라 장기적인 자극으로 피부에 문제가 생길 수 있어 주기적으로 관리해야 한다.

가장 확실한 방법은 수술이다. 개복하지 않고 질을 통해 비교적 간단하게 치료한다. 자궁을 적출하고 질벽을 복강 내 단단한 인대에 고정하거나(질식 자궁척출술+질벽봉합술), 인조보형물을 이용해 자궁이나 질을 인대에 고정하는 방법(자궁천골인대고정술) 등이 있다.

이 교수는 “골반장기탈출증은 고생을 마다하지 않던 우리 어머니 세대의 고된 시기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후유증”이라며 “노인들에게 말 못할 고민이 있는지 항상 관심을 갖고 챙겨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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